직장인들 로또 구입 열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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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9일 낮 12시10분 서울 강남구 삼성동의 국민은행 코엑스지점. 지점 내 로또 복권 판매코너에 회사원들의 긴 줄이 섰다. OMR카드 형식의 로또 용지에 진지하게 숫자를 표시해 내려가는 풍경은 마치 대입 수능시험 고사장 같았다.

이번주 들어 로또 복권의 인기가 상한가다. 2주째 1등 당첨자가 나오지 않아 당첨금이 누적되면서 11일의 1등 당첨금이 53억원에 이를 것이라는 보도가 나온 이후부터다.

지난해 12월 7일부터 주 1회 추첨을 시작한 로또는 판매 2주 만인 같은달 14일 첫 1등 당첨자가 나와 20억원을 챙겼고 21일 3차 추첨 때도 1등 당첨자가 20억원을 받았다. 이후 4, 5차 추첨에서 잇따라 1등이 나오지 않아 당첨금이 치솟게 된 것이다.

◇사무실마다 "사자"=전국적으로 인기지만 특히 대도시 직장인 사이에 이상(異常) 열풍이 불고 있다. 매월 빤한 봉급을 받아 생활하는 샐러리맨들이 '인생 역전'을 꿈꾸며 복권을 사고 있는 것이다.

로또 복권 운영업체인 국민은행측은 "서울 여의도.종로.강남 등 사무실 밀집지역에서 많이 팔리고 있다"며 "지난주 62억원을 기록하던 전체 판매액이 이번주 1백억원을 넘어설 것"이라고 내다봤다.

회사원 梁모(28.여)씨는 "당첨금이 올라가면서 평생 한번도 복권을 사지 않았던 여직원까지 로또에 관심을 갖는다. 이번주 초 부서 회식에서는 '50억원 대박이 터지면 뭘할까'가 화제였다"고 말했다.

중견기업 부장 金모(48)씨는 멋쩍은 표정으로 "아파트 값도 떨어지고 주식 시장도 별로인 데다 슬슬 직장에서 위치가 불안해 혹시나 하는 마음에서 로또를 샀다"고 했다.

◇계(契).사이버 모임 유행=당첨 확률을 조금이라도 높이기 위해 여러 명이 함께 많은 양의 로또를 구입하는 '로또 계'도 등장했다.

인터넷 벤처기업 직원 朴모(32)씨는 "직장 동료 4명과 로또계를 조직해 20만원 어치를 샀다. 구입하기 전 '당첨될 경우 투자 비율로 당첨금을 나눈다'는 각서를 썼다"고 전했다.

서울 강남에서 로또를 취급하는 편의점 판매원 李모(25)씨는 "가끔 점심시간에 30, 40대 회사원들이 삼삼오오 몰려와 몇십장씩 한꺼번에 산다"고 귀띔했다.

인터넷 사이트에선 로또와 관련한 사이버 모임이 늘고 있다. '다음'의 한 로또 카페는 이번주 회원수가 1천여명에서 3천여명으로 급증했다.

1부터 45까지 숫자 가운데 6개를 골라 선택하는 로또 방식 때문에 카페 게시판에는 행운의 숫자를 고르는 갖가지 비법이 소개되고 있다.

복권 열풍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쏟아지고 있다. 경실련 고계현 정책실장은 "요즘처럼 경제가 어려운 때 당첨 금액이 큰 복권은 서민에게 일확천금의 기회로 보이게 마련"이라며 "정부가 이런저런 기금 마련을 목적으로 지나치게 복권 사업을 키워 사회를 사행심에 멍들게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철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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