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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상호변경…오래된 브랜드는 그대로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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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6면

대한페인트잉크는 지난해 말 상호를 ㈜DPI로 바꿨으나 53년째 쓰는 대표 브랜드 '노루표' 는 그대로 쓰고 있다.

기업이미지통합(CI)에 맞춰 상표도 바꾸려고 했으나 그동안 쌓은 브랜드 이미지가 높다고 생각해 그만뒀다.

대한페인트의 변정권 감사는 "국내의 한 브랜드 평가기관이 노루표의 브랜드 가치가 1천억원에 달한다고 평가했다" 며 "고객들이 DPI는 몰라도 노루표는 잘 안다" 고 말했다.

상호를 바꾸면서도 브랜드를 그대로 두는 중소기업들이 적지 않다. 일부 업체는 아예 브랜드를 상호에 붙이기도 한다.

최근 애주가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백세주' 란 전통술은 이미 9년 전에 만든 브랜드다. 1993년 전통주 메이커인 배한산업은 국순당으로 상호를 바꾸면서도 백세주를 그대로 살린 것이 회사경영에 효자가 됐다.

초기에는 일반 가게에 제대로 진열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고전했다. 그러나 98년 말부터 전통주가 인기를 모으면서 최근 매월 6백만병 팔리고 있다. 백세주 하나로 올해 1천억원(세전 기준)의 매출을 올릴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축구화 업체인 ㈜키카는 96년 상호를 삼광스포츠에서 지금의 이름으로 바꿨다. 83년부터 독자브랜드로 내세운 '키카' 의 이름을 딴 것이다.

조만희 개발담당 이사는 "나이키 등 외국 메이저 브랜드 업체들이 주문자상표부착(OEM)방식의 생산을 여러 차례 요청했으나 이를 거절했다" 며 "중국 등 동남아 시장에서 인기를 모아 지난해 5백만달러어치를 수출했다" 고 말했다.

키카는 지난 3월 중국 베이징(北京)에 현지법인을 만들고 베이징 등 두곳에 직매장을 열어 중국시장에 본격 진출했다.

씨앗업체인 농우바이오는 '마니따 고추' 와 '아폴로 수박' 등 대표적인 종묘 브랜드를 앞세워 판매량을 늘리고 있다.

옛 상호인 농우종묘를 지난해 바꾸면서 '종자수호.농자수호.농지수호' 란 슬로건을 내걸고 대표적 토종 종묘업체로서의 입지를 다지고 있다.

외국 종묘회사들이 국내 종묘업체를 잇따라 인수하면서 국내 씨앗판매 경쟁이 치열하지만 이 회사는 올해 매출목표를 지난해보다 15% 늘어난 3백30억원으로 잡았다.

국내 대표적 장갑업체인 ㈜한영캉카루는 41년째 '캉가루' 상표를 쓰고 있다. 회사이름은 신일장갑(61년)-한영기업(76년)-한영캉가루(95년)로 세번 바꿨다.

이 회사 2세 경영인 강희숙 사장은 "캉가루란 상표를 상호에 붙인 후 국내외 인지도가 높아졌다" 고 말했다.

자동화설비 핵심부품인 직선운동시스템을 공급하는 삼익공업은 이달 초 '삼익LMS' 로 상호를 변경했으나 '삼익' 브랜드는 그대로 쓰고 있다.

다만 지난해 쌀통 사업부를 분리, 청산하면서 50대 이상 주부들에게 인기를 모았던 '삼익쌀통' 이란 브랜드는 없어졌다.

브랜드 평가업체인 ㈜메타브랜딩 기업컨설팅 사업본부 양문성 이사는 "기업들이 사업 분야를 개척하면서 상호를 변경하고 있지만 무형의 자산가치를 지닌 브랜드는 쉽게 버리지 못한다" 고 말했다.

고윤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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