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54)언론 숙정·통폐합|“1도에 1사만 남겨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80년 언론통폐합이 허문도씨등 80년 당시 권력의 핵심부에서 발상·입안되고 보안사의 언론대책반에서 자료제공등 뒷받침과 집행을 했다는 심증은 그 동안 나온 당사자들의 증언을 통해 상당히 굳어졌다. 다만 구체적으로 누가 어떤 일을 했는지는 구체적으로 밝혀지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언론대책반을 이끌었던 이상재씨는 최근 측근들에게 언론인 해직은 자신이 주도했지만 통폐합 작업은 구체적으로 관계하지 않았다는 말을 하고 있어 이 문제는 앞으로 국회 문공위 청문회를 통해 밝혀져야 할 대목이다.
그러나 당시 지방언론사의 통폐합 과정을 직접 겪었던 당사자들의 증언을 들어보면 보안사가 사전정보수집, 압력에 의한 포기각서작성, 흡수사와 피흡수사간의 중재·사후처리등 처음부터 마지막 뒤처리까지를 맡았었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있다.
전남일보와 전남매일 통폐합의 경우 형식상으로는 전남매일이 전남일보를 흡수토록 해놓고 통폐합으로 새로 창간된 광주일보의 주식 51%를 전남일보측이 차지하도록 만들어 놓아 양측간에 갈등의 불씨를 남겨놓은 뒤 뒷날 보안사가 직접 중재에 나선다.
당시 두 신문사의 통폐합과정을 잘 알고 있는 N씨의 증언.
『애당초 전매가 전일을 흡수토록 작업을 해놓고 80년 12월20일 광주보안대장 박동준이란 사람이 양측의 심상우·김종태대표를 불러 전매측이 갖고 있던 광주일보주식 49%를 13억원에 전일측에 넘기는 중재를 했습니다. 49대51 이라는 광주일보주식배분도 보안사측에서 통폐합 당시 정한 것으로 추측되는데 아마 전일측이 전일방송도 빼앗기고 자금동원력도 있고하니 전일측이 광주일보의 51%주식을 현금으로 매입토록 한 뒤 다시 나머지도 인수토록 조종한듯 합니다.
또 그때는 심상우씨가 신문경영보다는 정계진출에 뜻을 두고있어 이 같은 계획을 추진한 것으로 알고 있읍니다. 49%주식인수는 그후 유야무야되다가 81년11월 인신문제로 광주일보내분이 터지자 이상재씨가 직접 중재에 나서 11월23일 국회의장실에서 15억원에 합의하게 됩니다. 당시 광주에서는「광주언론이 시끄러우면 광주시내가 시끄럽고 광주가 시끄러우면 전국이 시끄러워진다」는 이야기가 나돌아 보안사가 적극적으로 나선 것으로 알려졌었습니다. 결국 전매측은 완전히 신문사를 빼앗기고 전일측은 막대한 재산피해를 본 셈입니다.』
경우는 좀 다르지만 진주의 경남일보도 보안사가 적극 개입해 신생 경남신문에 통폐합된다.
당시 경남일보의 김윤양사장증언.
『10월하순께 보안사 요원들이 경남일보의 각종 정보를 수집한 것으로 보고를 받았습니다. 그후 11월초 경남일보가 마산의 경남매일에 흡수, 통폐합된다는 이야기가 나돌았지만 믿지 않았습니다. 당시 경남일보의 사세가 경남매일보다 나았고 통폐합소문이 나돌기 얼마전 경남매일 간부들이진 정화차원에서 구속되는 등의 시련을 겪는 일이 있었거든요.
없애더라도 문제가 많은 신문사를 없애겠지 하고 안심하다가 11월19일 마산의 보안부대장에게 불려가 포기각서에 강압적으로 도장을 찍게 됐습니다. 일선기자들의 비행을 담은 서류철을 내보이며 「기자들 고생시키지말라」고 하는등 위압적으로 나와 어쩔 수 없었읍니다.사 후 뒤처리는 10일 안에 끝낸다는 보안사에서 마련해둔 스케줄대로 진행됐죠. 기자들 퇴직금 처리가 문제됐으나 보안사에서 알선해줘 경남은행으로부터 1억여원을 대출받아 해결했읍니다.
갑작스럽게 이루어진 일이라 경남일보측에서도 무척 당황하더군요. 경남일보사람들과 윤전기등 각종 기자재를 받아놓고는 한동안뒤처리로 고생했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경남매일이 경남신문으로 새로 창간될 때 제호를 경남일보로 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요청을 받았지만 거절했습니다. 통폐합과정에서 건진 것이라고는 이 이름 하나뿐이었읍니다.
대구에서 당시 매일신문과 쌍벽을 이루었던 영남일보도 마찬가지 운명에 처해진다.
영남일보 이종명 당시 편집국장등 관계자들의 증언.
『그 당시 이재필사장은 그해 8월에 해직된 기자들의 구명운동과 뒤숭숭한 언론가의 동정을 살피기 위해 서울로 올라와 정도영 당시 보안사보안처장등 힘깨나 쓴다는 사람들을 찾아다녔읍니다.
그런데 하루는 대구상공회의소 회장으로 있는 박윤갑씨로부터 영남일보가 매일신문으로 넘어간다는 얘기가 있으니 대책을 세우라는 전갈이 왔읍니다.
며칠지나 11월12일 오후 중앙정보부 사람으로부터 「영남이 48%, 매일신문이 52%로 통폐합이 된다」는 정보를 입수했읍니다. 이사장은 앞서 「아주 먹혀버린다」던 박회장의 귀띔과는 달리 그나마 48%의 주식을 갖는다는 말에 그래도 좀 안심을 했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그 날밤 대구로부터 급한 전갈이 왔습니다. 이미 영남의 책임자 몇명이 대구보안사에 불려가 있고 이사장은 보안사령관이 찾으니 급히 보안사령부로 가라는 것이었읍니다.
이사장은 자정이 넘어서 급히 보안사로 갔다고 해요. 그러나 사령관은 커녕 과장급 장교가 기다리고 있었고 그 장교는 포기각서에 서명할 것을 요구했답니다.
포기각서에는 영남은 11월25일자로 폐간하고 영남의 일반종업원은 본인이 원하면 매일로 가되 영남의 사옥을 비롯한 모든 부동산 및 기자재는 감정원평가액으로 매일이 인수하며 종업원 퇴직금은 한 달안에 모두 지급한다는 내용이 적혀있었답니다.
새벽 4시까지 버티다가 이사장은 결국 서명을 했지만 한 달내로 전종업원의 퇴직금을 준다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했읍니다.
결국 뺏길건 다 빼앗기고 보안사의 알선으로 남은 사옥과 부동산을 담보로 8억원을 융자받아 퇴직금을 주었읍니다.』
한푼의 보상금도 받지 못한 경우는 또 있다. 지난번 문공위 국정감사에 나온 경기신문의 홍대건사장의 경우는 통폐합조치 이전에 보안사로 끌려가 가혹행위까지 당한 뒤 포기각서에 서명했고 훗날 재무부로부터 전 재산을 농어민후계자육성자금으로 받았다는 영수증쪽지 하나만을 받았다고 증언한바 있다.
또 제주신문의 김관희 전사장도 그해 11월13일부터 6일간 불려가 압력 끝에 결국 주식을 포기하고 개인명의로 되어있던 대지도 공익사업에 기증하는 명분으로 신문사와 함께 빼앗기고 만다. <특별취재반>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