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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약 강행 대신 공론화 평가할 만" "책임 면하려는 인상 준 것도 사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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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신고리원전 5·6호기 공론화위원회가 20일 내놓은 결론은 ‘문재인식(式)’의 첫 의사결정 실험이었다.

‘숙의민주주의’ 첫 사례 전문가 평가 #공론화위 모델, 갈등 조정엔 효과적 #정책 결정에 쓰면 포퓰리즘 위험 #“극히 예외적으로 적용해야” 지적

그동안 교과서에 주로 등장하던 ‘숙의(熟議)민주주의’ 모델이 실제 정책 결정에 활용됐다는 사실 자체에 대해선 전문가들의 평가가 우호적이다.

숙의민주주의는 ‘심의 민주주의’라고도 한다. 단순한 투표가 아닌, 숙의(deliberation)를 통한 합의가 의사결정의 중심이 되는 민주주의 형식이다.

한국정책학회 대선 공약평가단장이었던 나태준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는 “우리 사회에 필요한 숙의민주주의와 시민민주주의가 공론화위 과정을 통해 실제로 처음 구체화됐다”며 “우리나라가 한 단계 더 발전을 했고, 역사적 의의도 있다”고 말했다.

김민호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행정법) 교수는 “과거 대통령들은 논란이 있더라도 그대로 공약을 추진하려던 경향이 있었다”며 “이번에는 대통령 공약을 힘으로 밀어붙이기보다는 공론화 과정을 거쳤다는 것이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청와대는 다른 갈등과제에도 공론화 방식을 적용할 가능성을 내비치고 있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공론화위에 뭘 부칠 것이냐는 앞으로 논의해야 한다”면서도 “국가가 주체인 문제에 범국민적 공론이 필요한 부분들이 공론화위 대상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공론화위 같은 의사결정 방식의 확대에 대해선 신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나태준 교수는 “이번 결정은 국가적으로 굉장히 중요한 결정을 하면서도 결단을 하지 못하고 책임을 면하려는 듯한 인상을 준 것도 사실”이라며 “면피성 행정이 되지 않기 위해선 앞으로 어떤 안건에 대해 공론화위 과정을 거칠 것인지를 신중하게 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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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헌법) 교수는 “공론화위가 정부의 정당성을 획득하는 수단이 되면 의미가 없다”며 “공론화위는 정말 예외적으로 사용하되 대표성과 전문성, 편향성 문제가 모두 해소돼야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김민호 교수는 “갈등의 조정에는 공론화위 모델이 신선할 수 있지만 정책의 결정에 이 방법을 쓰는 것은 효용성보다는 위험성이 더 클 수 있다”며 “경우에 따라선 굉장히 위험한 발상이 될 수 있고, 그것이 확대되면 포퓰리즘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윤종빈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이번에 정부가 의도한 대로 정책진행이 안 됐다는 점에서 국정운영에 브레이크가 걸리는 시발점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허진 기자 b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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