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반 컬렉션] 사티의 피아노곡 '짐노페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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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린 왈츠풍의 리듬, 금방이라도 흥얼거릴 수 있는 명쾌한 선율, 가을 하늘처럼 군더더기 없이 청명한 화음….

프랑스 작곡가 에릭 사티(1866~1925) 가 남긴 50여편의 피아노 소품들은 바쁜 일상에 지친 현대인들에게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청량감을 선사해준다.

사티의 피아노곡 중에서도 대표작인 '3개의 짐노페디' 는 청정지대에서 길어 올린 맑은 샘물처럼 세속의 때가 묻지 않고 투명하다.

현란한 기교와 숭고하고 장엄한 분위기만을 음악의 미덕으로 삼던 시류에 반기를 든 그의 음악은 한마디로 솔직담백하다. 멜랑콜릭한 부분이나 밝고 쾌활한 악절이 모두 그렇다.

짐노페디는 고대 스파르타의 연례 행사의 하나로 트로이 전투에서 희생된 병사들을 추모하는 축제다. 나체의 젊은이들이 합창과 정적인 군무로 신을 찬양하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곡은 기타.아코디언.색소폰 등으로 편곡돼 연주되는 제1번이다. 영화와 CF의 배경음악으로 등장했다.

사티의 친구 드뷔시는 '짐노페디' 의 제1번과 제3번을 관현악으로 편곡했다. 사티의 피아노곡은 그가 생활비를 벌기 위해 파리 몽마르트르의 카페 '검은 고양이' '클루' 에서 손님들을 위해 연주했던 살롱음악이다.

사티 특유의 유머 감각과 풍자는 드뷔시.라벨.풀랑.미요.케이지에게 영향을 주었다. '짐노페디' 가 너무 단조롭다면 동양적 신비와 몽상적 분위기가 가미된 '6개의 그노시엔' 을 권한다.

프랑스 피아니스트 파스칼 로제(50) 는 84년 후안 미로의 '어릿광대의 카니발' 을 커버 그림으로 내세운 사티 피아노곡집을 내놓았다. 단순 명쾌한 선율 속에 담긴 복잡 미묘한 울림을 잘 표현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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