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대한 빨리 고물차로 만들어야 칭찬받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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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현대자동차가 개발 중인 신형 SUV(프로젝트명 NC)가 26일 부식시험과 주행내구 성능시험을 마친 뒤 경기도 화성 남양종합기술연구소 내 주차장에 정차해 있다. 험한 도로 주행과 고온·자외선·혹한 시험 등을 거쳤다. 차량 앞뒤에는 디자인 노출을 막기 위해 막을 씌워 놓았다. [사진 현대자동차]

경기 침체 때문일까.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이 내구성에 바짝 신경을 쓰고 있다. 고장이 없고 오래가는 차를 만들려 한다는 소리다. 그런 차는 몇 년 타다 팔 때 중고차 값을 제대로 받을 수 있다. 그래서 경기 침체기에 소비자들은 이런 차를 선호한다. 실제 2008년 금융위기 전까지만 해도 ‘브랜드 이미지’ 중심으로 차를 구매하던 북미지역 소비자들이 금융위기 후엔 연료 효율과 더불어 내구성을 깐깐히 따지기 시작했다는 분석이다. 이런 시장 흐름에 국내 차 업체들은 어떻게 대응하고 있을까. 경기도 화성의 현대·기아차 남양종합기술연구소를 가봤다.

남양연구소 내구성능개발실. 이곳의 임무 중 하나는 차를 빨리 늙게 하는 것이다. 일부러 험한 길을 찾아 운전하는 것은 기본이고, 차에 나쁘다는 소금물과 고온을 가하기도 한다. 그렇게 자동차에 단기간에 집중적인 스트레스를 가한 뒤 차량 곳곳이 얼마나 마모되는지 등을 측정한다.

 이를 바탕으로 해당 부분의 내구성을 높이는 작업도 진행된다. 때문에 운전자들의 작은 운전습관 하나하나가 연구 대상이다. 습관에 따라 마모가 진행되는 정도도 달라서다.

실제로 최근에는 미국산 수출 차량의 운전석 가죽시트의 내구성을 높이는 작업을 마무리했다. 미국 운전자의 경우 국내와 달리 오른쪽 뒷주머니에 지갑을 넣는 이가 많아 운전석 시트에 압력이 더 가해지고, 그만큼 마모가 심했던 점을 개선한 것이다.

 내구실에서는 주로 양산 전 개발단계의 차량을 시험한다. 시험한다기보다 ‘못살게 군다’는 말이 맞을 정도다. 그러다 보니 한 해 500대가량이 못쓰게 된다. 양산 전의 차량이어서 한 대를 만드는 데 드는 비용이 3억~5억원. 여기서 한 해 대략 2000억원어치 차량을 못쓰게 만드는 것이다.

 테스트는 다양하다. 험한 길을 주행하는 것은 기본. 농도 짙은 소금물을 계속 뿌리기도 하고, 흙탕물에 담갔다가 섭씨 90도가 넘는 사우나실에 집어넣기도 한다.

 지난 23일 찾은 남양연구소 내구실에서는 2013년 출시 예정인 신형 제네시스에 대한 내구실험이 한창이었다. 수십 개 조명으로 자외선을 쪼였다. 자외선을 쬐는 방안 온도는 섭씨 50도. 그 속에서 3시간 ‘선탠(?)’을 한 뒤 바로 소금기 머금은 비를 맞혔다. 그래도 페인트가 멀쩡한지를 살펴보고, 또 사막 같은 혹서지나 북극 같은 혹한지 어디에 내놓아도 문제가 없도록 차체 외부 및 주요 안전부품의 성능을 철저히 확인하는 시험이었다. 그런 다음 다시 급가속과 급제동을 반복하는 주행시험이 24시간 연속 이뤄졌다.

 내구성능개발실 정원욱(55) 이사는 “우리는 10여 일이 채 되지 않는 정도의 실험만으로 1년가량 주행한 차와 비슷한 정도의 노후성을 띠도록 한다”며 “90~100일 정도면 약 10년가량 탄 차와 비슷해진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고열내구 실험의 경우 40%가 넘는 습도 속에서 90도가 넘는 고열을 4시간 이상 가한다. 염분 실험도 마찬가지다. 바닷물 소금기의 두 배가 넘는 5%가량의 염수를 가지고 서너 시간 넘게 차 곳곳에 샤워처럼 뿌려댔다. 그런 다음엔 자동차가 받는 하중의 크기를 10~100배가량 강화한 특수 도로를 쉴 새 없이 달렸다. 채 1㎞가 안 되는 거리에 끊임없는 요철을 박아 넣은 벨지안 도로의 경우 기자가 잠시 체험했을 뿐인데도 멀미가 나올 정도였다.

 이 회사 문호성 부장은 “일반 도로의 100배가량의 스트레스를 차에 줄 수 있도록 고안된 길”이라며 “벨지안 도로의 설계 자체가 자동차 회사가 공개를 꺼리는 극비 중 극비”라고 했다. 최근에는 대당 30억원을 호가하는 모의주행기(로드 시뮬레이터)를 통해 실제 도로를 주행하지 않고도 도로를 주행한 것과 같은 거리감과 부담을 차에 주는 기술을 개발했다.

 차 문을 반복적으로 여닫는 시험도 한다. 택시 같은 영업용 차량의 경우 손님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뒷좌석 우측 문을 기준으로 보통 10만 회 이상 문을 여닫고 고장 유무를 점검한다. 신천우(51) 내구기술팀장은 “영업용 차량의 경우 적어도 50만~60만㎞ 주행해도 문제 없도록 내구성을 잰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하이브리드카용 부품에 대한 새로운 내구 기준을 만들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최근 내구성을 측정하는 여러 검사 항목에 한 가지를 더 보탰다. 내년부터 세계 3대 차 내구성 레이스 경기장 중 한 곳인 독일 뉘버그링 서킷에서 차량 주행성능 시험을 진행한 뒤 출고하기로 했다. 뉘버그링 서킷은 도로 총 길이가 21㎞에 달하고 서킷 내 해발고도 차이가 300m에 이른다. 차가 여러 가지 도로 상황을 경험할 수 있다는 애기다. 때문에 뉘버그링 서킷에서는 벤츠와 BMW, 렉서스 등 다양한 럭셔리 브랜드들이 주행시험을 해왔다.

뉘버그링 서킷 진출은 이 회사 정의선(42) 부회장이 주도했다. 정 부회장은 “차를 극한의 상황까지 몰아 마지막 1%의 차이까지 완벽해야 한다”며 뉘버그링 서킷 진출을 추진했다. 계획에 따라 현대차는 내년부터 ▶유럽 수출 전 차종과 ▶고성능 소형차종 등을 이곳에서 우선 테스트할 계획이다. 또 전남 영암 F-1 경기장에서도 현대차가 생산하는 전 차종을 테스트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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