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공적자금 미래에 투자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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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크리스마스 직전 독일에서는 환호성을 지르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 중 한사람은 독일 총리 슈뢰더였고 다른 사람들은 독일의 최대 건설회사의 하나인 홀츠만(Holzmann)사에 근무하는 종업원들이었다.

이유인즉 파산 직전에 있는 이 건설회사에 인기가 땅에 떨어진 독일 총리가 공적자금 수백억원을 투입해 파산을 막았기 때문이다.

*** 시장원리에 반하는 정책

그러나 공적자금 투입으로 부실기업을 회생시키는 것에 대해서는 학계.경제계, 나아가 유럽연합(EU).세계무역기구(WTO)등에서 신랄한 비판이 있었다.

그것은 시장원리에 반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회복의 기미가 없는 기업에 공적자금을 투입했기 때문이다. 인기영합정책(populism)으로밖에 이해할 수 없는 그 조치로 인해 슈뢰더 정권의 신인도에는 큰 임팩트가 없었다.

독일 국민 대다수는 공적자금이 미래지향적인 구조조정, 신규사업 또는 단기적으로 경기부양에 투입되는 것은 납득하지만 도산된 기업을 회생시키려는 과거 지향적인 투자는 자원의 낭비만 가져올 뿐이라고 믿고 있다.

아니나 다를까 홀츠만사는 2년이 지난 지금도 회생하지 못하고 있다.

공적자금 투입으로 시장실패를 최소화하려는 이러한 시도는 선진국에서 흔히 볼 수 있다. EU 제국의 연합항공회사인 에어버스, 독일과 프랑스의 자동차회사, 독일의 생명공학회사들 및 제약회사들, 독일 철강산업의 사업다변화 과정 등에 공적자금이 투입된 바 있다.

그러나 공적자금(국민의 저축)을 투입할 때는 항상 어떤 방식으로, 어떤 분야에, 언제까지 투입할 것인가에 대해 논란이 있어 왔다.

단순히 정부의 시장개입이라는 차원이 아니라 공적자금을 투입했을 때 해당기업의 경쟁력이 회복된다는 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정책 당국자들은 공적자금 투입시 가장 중요한 판단기준으로 과연 미래를 위해 바람직한 투자인가, 즉 미래 지향적인 투자인가 하는 점을 염두에 두었다. 세계시장이 일원화된 글로벌 경쟁체제 아래에서는 더더욱 그러했다.

최근 한국에서 하이닉스 반도체.쌍용양회.서울보증보험 등 부실기업에 대해 채권단의 출자전환을 포함한 공적자금 투입문제를 둘러싸고 이견이 있는 듯하다.

국민경제에 미칠 파장을 고려해 지원이 불가피하다는 주장과 공적자금을 투입해도 어차피 회생이 어려우니 시장에 맡기자는 주장이 대립하고 있다.

필자는 부실기업에 대한 공적자금 투입은 그만큼 우리를 세계화 경쟁에서 낙후시킬 뿐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것은 시장원리에 맡겨야 한다는 당위성 차원을 떠나 미래를 위한 투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부실화된 기업을 냉정하게 따져보면 제품개발능력, 마케팅, 경영자의 리더십 등 경영 전반에 걸쳐 경쟁사에 뒤진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 기업에 공적자금을 투입한다고 해서 경쟁력이 되살아날 것 같지가 않다.

한국 경제가 IMF 이후 구조조정 과정에서 1백40조원의 거대한 공적자금을 투입했으나 성공적인 결과를 가져오지는 못했다. 공적자금이 투입된 기업이 부실로 연결돼 또 다시 공적자금을 요구하고 있지 않은가?

*** 경쟁력 있는 벤처 지원을

오히려 구조조정과정에서 부작용만 발생하고 있다. 즉 공적자금을 받아 퇴출의 위기를 벗어난 기업과 퇴출당한 기업간의 갈등이 그것이다.

얼마전 필자가 한국을 방문했을 때 모 건설회사 직원들이 길거리에서 시위하고 있는 장면을 목격했다. 이유인즉 다 같이 국민경제에 기여한 업체인데 '누구는 살리고 누구는 죽이는가' 억울하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불분명한 원칙, 누가 보아도 납득이 잘 가지 않는 기준으로 부실기업에 공적자금을 투입했으니 문제가 간단치 않다.

대통령의 경제철학(DJnomics)의 쌍두마차는 시장경제와 민주주의의 성숙한 발전이다.

그러나 세계화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경쟁력을 갖추는 것이 급선무라는 점을 다시 한번 상기해야 한다. 그것은 바로 부실기업이 아니라 벤처기업 등 새로운 미지의 세계를 개척하는 기업에 대한 투자다.

제발 정부는 한국 경제의 미래를 위해 투자해주기 바란다.

박성조 교수 <베를린자유대 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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