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접근 막으니 … 생태통로 살더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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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남시 갈현동에 위치한 갈마치고개의 생태통로. 성남시가 설치한 폐쇄회로TV(CCTV)에 촬영된 야생 고라니의 이동 모습. [성남시 제공]

성남과 광주를 잇는 경기도 성남시 중원구 갈현동 389번 지방도 갈마치고개의 ‘야생동물 전용길’. 길이 40m, 폭 15m 규모의 교량식 생태통로다. 사람은 바로 옆의 작은 산책로를 이용해야 한다. 산책로와 생태통로 사이에는 2m 높이의 나무가 늘어선 방음벽이 가로막고 있다. 야생동물이 사람에게 위협을 느끼지 않도록 한 배려다. 생태통로에 나무 8000그루를 심고 돌무더기로 은신처를 만드는 등 자연생태환경을 조성했다. 폐쇄회로TV(CCTV) 카메라 2대가 설치돼 야생동물의 움직임을 24시간 살핀다.

 이런 노력 덕에 도로로 인해 끊어진 주변 검단산과 영장산, 불곡산의 생태환경이 다시 이어졌다. 2008년 11월 통로를 만든 뒤 야생동물이 하나 둘 모습을 드러냈다. 성남시가 4년간 모니터링한 결과 너구리와 고라니, 멧돼지, 오소리 등 8종류의 야생동물 1000여 마리가 이 길을 이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통로를 만들기 전에 빈번했던 야생동물이 도로를 건너다 자동차에 치이는 ‘로드킬’ 사고도 사라졌다. 성남시 환경보호과 김현수 주무관은 “야생동물이 안전하게 오갈 수 있도록 도로 위로 생태통로를 만든 덕분”이라고 말했다.

 경기도 내에 설치된 생태통로 59곳의 명암이 엇갈리고 있다.

 성공 사례도 있지만 생태통로가 사람 중심으로 만들어져 생태축 연결이란 제 역할을 못하고 있는 곳도 많다.

 대표적 실패 사례는 고양시 행신동의 생태통로다. 2008년 행신2지구를 조성하면서 50m 길이로 지어졌지만 야생동물은 이 길에 들어올 수 없다. 통로 한쪽 끝과 맞닿은 산의 소유자가 사람들이 산에 무단 출입하지 못하도록 철제 울타리를 설치했기 때문이다.

 수백억원을 들여 지은 광교신도시의 생태통로도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있을지 논란이다. 경기도시공사는 43번 국도 때문에 단절된 광교산 생태축을 복원하기 위해 길이 237m, 폭32m짜리 거대한 생태통로를 만들었다. 건설비용만 500억원이나 소요됐다. 통로에는 폭 3m짜리 산책길과 연못 등 주민들의 휴식처도 만들어졌다.

 이곳도 사람의 흔적과 소음에 민감한 야생동물 습성을 고려하지 않은 탓에 제구실을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생태통로 기능을 잃어버린 ‘수백억원짜리 산책로’란 지적이 나오고 있다. 광교신도시 안에 건설하는 10개의 생태통로 중 대부분은 사람 출입도 가능하도록 돼 있다.

 경기도는 다음 달까지 도내 59개 생태통로에 대한 실태조사를 벌이기로 했다. 생태통로 중 절반 정도가 제 기능을 못한다는 판단에서다.

유길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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