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활동 중단했던 김구라 “해서는 안 될 말들 … 두고두고 잘못 갚아야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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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방송 시절의 잘못들은 하나하나 갚아가겠다. 출발은 그렇지 못했지만 이제는 여러 세대에게 사랑받는 방송인이 되고 싶다”고 말하는 김구라. 새로운 출발점에 서 있는 듯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김구라씨, 앉은 자세가 너무 조신한데요?”

 “아, 그래요? 제가 원래 이렇게 잘 앉지 않았는데…”

 사진기자의 말에 그가 편안하게 자세를 고쳐 앉았다. 겸연쩍은 표정이 짧게 스쳤다. 아직도 그의 마음 한구석을 누르고 있는 심리적 무게가 일순 느껴졌다.

 그가 돌아왔다. 지난 4월, 10여년 전 인터넷방송에 남긴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 비하 발언이 문제된 직후 방송을 떠났던 그다. MBC ‘라디오스타’, JTBC ‘아이돌시사회’ 등 10여개의 프로그램을 전부 중단했다. 그리고 지난 9월 tvN의 ‘택시’와 ‘화성인 바이러스’로 활동을 재개했다. 내년 1월에는 JTBC의 새 예능 프로그램도 진행한다.

 “방송 재개 시점을 놓고 저도 고민 많았습니다. 처음엔 방송은 더 이상 못할 거라 생각하고 가게 자리를 알아보기도 했어요. 그래도 저를 잊지 않고 불러주시는 분들이 계셔서 용기를 냈습니다.”

 5개월의 공백동안 그는 매주 위안부 할머니들의 쉼터인 나눔의 집을 찾았다. “처음엔 저를 싫어하는 분들도 계셨어요. 그러나 할머니들이 워낙 큰 일을 겪어서 그런지, 저를 금세 받아주시더라고요. 이제는 아들 같은, 손자 같은 느낌으로 매주 인사드리러 갑니다.”

 할머니들과의 관계는 돈독하다. 경기도 광주의 나눔의 집과 김포인 그의 집이 가까워, 인천공항 가는 할머니들의 짐을 날라드리는 일도 한다.

 “여론을 의식한 제스처로 보시는 분들도 계시겠죠. 하지만 저로서는 이 방법 외에 저의 죄스런 마음을 갚을 길이 없네요.”

 문제발언이 공개된 직후 그는 활동중단을 결정했다. 발빠른 대응이라는 얘기도 나왔다. “저 혼자 결정이었고, 방송을 그만둬야 한다는 생각도 1~2분 만에 했습니다. 사실 그동안 저는 내내 불안했어요. 드디어 올 게 왔구나, 이런 느낌이었습니다. 인터넷 방송 시절 저는 많이 편협했고, 오직 씹기 위해 대상을 가리지 않고 씹어댔죠. 일면식도 없는 힘없는 여자 연예인들을 공격하면서 배설의 쾌감을 느꼈고요. 그러면서 해서는 안될 말도 했지요. 제가 메이저로 온 다음, 언젠가 제 과거가 제 발목을 잡겠구나, 생각했습니다. 과거의 제가 무책임하게 했던 잘못에 대해서는 두고두고 갚아갈 생각입니다.”

 다시 돌아온 방송, 짧은 공백이었지만 후유증은 없을까? 또 독설의 아이콘 대신 이제는 ‘착한 남자’ 김구라가 되는 것은 아닐까? “천만에요. 제가 개인적으로 반성하는 것은 반성하는 거고, 방송인으로서는 제 색깔을 계속 가져가야 하죠. 사실 전 아주 현실적이고 냉정한 사람입니다. 제가 독설을 한다고 하지만, 사실 대부분 사람들이 남 기분 상하게 하지 않으려고, 예의상 안하는 얘기를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보는 게 제 스타일이거든요. 방송 유전자가 남들하고 달라요. 그게 어디 가겠어요.”

 부러운 연예인으로 유재석을 꼽는 것도 비슷한 이유다. “재석이는 겸손함, 포용력으로 폭넓은 대중들에게 사랑받잖아요. 반면 전 이 자리에 올지도 몰랐고, 전세대를 아우르는 건 꿈도 못 꿨어요. 막상 이 위치에 올라와 보니 너무 부러워요. 태생적으로 못했지만 앞으론 좋은 모습 많이 보여드리면서 여러 세대에게 사랑받고 싶네요.” 김구라의 새출발 선언이다. 그는 또 “열 살 위면서 아직도 정상의 자리를 지키며 롱런하고 있는 이경규 선배님도 부러운 선배”라고 말했다.

 청바지에 체크무늬 재킷, 연예인 티가 별로 안 나는 평범하고 수수한 차림의 그는 휴대폰도 2G폰이다. “인터넷하고는 별로 인연도 좋지 않고(웃음), 굳이 스마트폰 쓸 이유를 못 느낀다”고 했다. 통화 연결음은 아들(김동현)이 더빙을 했던 애니메이션 ‘리틀 비버’의 OST. “방송중단하고 집에 들어앉았는데, 아내나 아들이나 누구 하나 ‘우리 어떻게 하지?’ 이런 말을 안 했어요. 그게 참 도움이 됐죠.”

 내년 1월부터 JTBC에서 진행할 ‘내가 제일 잘 샀어’는 소비자 입장에서 현명한 선택을 돕는 프로그램이다. “이제는 예능에서도 신변잡기가 아니고 정보가 대세죠. 실속있는, 도움되는 프로그램을 시청자가 원하는 겁니다.” 그런 정보를 따라가기에 신문 읽기만 한 것이 없다는 그는 “맥을 잘 집는, 방송의 흐름을 아는 영리한 방송인”이 목표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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