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원들 “복지예산 증액”… 임채민 세 번 “NO”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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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예산) 증액에 대해 정부 동의를 얻겠습니다. 2013년 (국회가 조정한) 예산안에 임 장관은 동의합니까.” (오제세 국회 보건복지위원장)

 “죄송하지만 전체 조정에 대해 동의는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임채민 보건복지부 장관)

 “동의 안 하면 가결이 안 되는 거죠?”(오 위원장)

 “저는 증액이나 의원님들이 조정한 안에 대해 전적으로 동의하기는 어렵습니다.”(임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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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0일 오후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회의장에서 오간 대화다. 복지위는 이날 무상보육 확대와 기초노령연금 인상을 담은 내년도 예산안을 의결하려다 임 장관의 반대에 부딪혔다. 임 장관은 이날에만 세 차례 “동의할 수 없다”고 맞섰다. 우여곡절 끝에 22일 복지위에서 복지부 예산안은 의결됐다. 앞으로 예결위원회와 본회의 처리 절차를 남겨두고 있다. 이 과정에서 정부가 끝까지 반대하면 복지위의 예산안 수정의결은 무산될 수밖에 없다. 헌법과 국가재정법상 국회는 정부 동의 없이 정부가 제출한 예산을 증액할 수 없다고 규정돼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반대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지난해 말 국회 예결위가 난데없이 무상보육을 시행키로 하면서 집에서 키우던 애들이 7만 명 이상 어린이집으로 쏟아져 나왔다. 그래서 정부가 이번에 소득 상위 30% 가정은 무상보육이 아닌 10만~20만원을 부담케 하는 내용의 ‘무상보육 폐기안’을 만들었다. 이를 국회가 다시 무상보육으로 되돌리려는 것이다. 복지위가 의결한 무상보육 안이 시행되면 정부 계획(5조6837억원, 지방비 포함)보다 2조6854억원, 기초노령연금이 20% 인상되면 6484억원이 늘어난다.

정부 반대의 중심에는 임 장관이 있다. 9월 이 같은 개편안을 내놨다가 10월 5일 국정감사 첫날부터 집중공격을 받았다. 당시 인사말을 끝내자마자 여야 국회의원들이 파상공세를 폈다.

“복지부가 뭐가 가장 중요한지 모르는 것 같다.”(새누리당 류지영 의원) 의원들의 비판이 너무 거세져 정회까지 해야 했다. 두 시간 넘게 격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민주당 이목희 의원은 “국회가 결정하면 하는 거다. 설령 장관이 가는 길이 맞을지라도 국민의 대표기관이 A라고 하면 A로 가야 하는 것 아닙니까”라고 몰아붙였다. 임 장관은 “(무상보육 확대) 속도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말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무상보육을 하다 보니 지방정부의 재정난 등 여러 문제가 발생했다”며 조목조목 반박했다.

임 장관이 뜻을 굽히지 않자 결국 복지위 의원들이 ‘무상보육 예산 증액’을 결의했다. 이달 들어 예산 국회가 열리면서 정치권 공세는 더 심해졌다. 지난 5일 복지위에서도 의원들의 질타가 이어졌다. 그러나 임 장관은 “(정부의 상위 30% 아동 제외 방침이) 보육이 질서 있게 확대해 나갈 수 있는 안이라고 생각한다”고 맞섰다. 임 장관은 10월 이후 무상보육과 기초노령연금 인상을 두고 세 차례의 회의에서 “노(No)”라고 맞선 것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상임위에서 심의한 예산을 장관이 반대한 것은 거의 전례가 없다”고 말했다.

임 장관은 서울고·서울대(서양사학과)를 졸업한 뒤 산업자원부(행정고시 24회)에서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지식경제부 1차관과 국무조정실장(장관)을 거쳐 지난해 9월 보건복지부 장관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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