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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정보기술, 베네수엘라 전자주민카드 사업 `수포' 위기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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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정보기술이 주도하는 현대컨소시엄이 베네수엘라 정부가 추진하는 전자주민카드(National ID) 사업 경쟁입찰에서 우선협상자로 선정됐다가 베네수엘라 정부의 일방적인 우선협상자 선정 파기에 따라 사업 수주가수포로 돌아갈 위기를 맞고 있다.

3일 외신에 따르면 루이스 미킬레나 베네수엘라 내무장관은 현지 기자들에게 "전자주민카드 공급 프로젝트에 대한 참여 기회가 새로운 국제 입찰 업체에 공개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베네수엘라 전자주민카드 사업은 2천400만명의 베네수엘라 거주민, 이민자, 임시직 노동자 등에게 전자주민카드를 공급하는 것으로 무려 2억2천775만달러 규모의 대형 프로젝트이다.

현대컨소시엄은 지난 1월 이 사업의 우선 협상대상자로 선정됨에 따라 이번 사업이 국내 기업이 IT(정보기술) 분야에서 수주한 사상 최대의 해외 사업으로 기록될 전망이었다.

이에 따라 계약 당사자인 현대정보기술은 물론 우리 정부도 최종 계약 체결에 지대한 관심을 보였으나 결국 베네수엘라 정부의 돌연 태도 변경으로 인해 우선협상자 선정 8개월만에 모든 것이 원점으로 돌아갈 운명에 처하게 됐다.

▲ 베네수엘라 정부의 우선협상자 파기 배경 = 현대정보기술은 지난 2일 현지 언론을 통해 베네수엘라 정부의 일방적인 우선협상자 선정 파기 소식을 처음 접했지만 이와 관련 아직 베네수엘라 정부측으로부터 어떠한 공식적인 입장을 전달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현대정보기술은 현지 파견팀을 중심으로 베네수엘라 정부의 이번 조치에 대한 진의를 파악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여러가지 가능성을 추론해볼뿐 정확한 배경이나 베네수엘라 정부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다만 현대정보기술은 여러가지 시나리오를 가정해놓고 다각도로 대처한다는 방침이다.

현대정보기술이 첫번째 가능성으로 꼽는 것은 베네수엘라 정부가 계약을 체결하지 않겠다는 것은 진의가 아니라 일종의 `페인트 모션''으로 엄포를 한 뒤 리베이트를 얻어내는 등 계약 조건을 자신들이 유리한 상황으로 몰고가려는 의도일지도 모른다는 것.

하지만 베네수엘라 정부의 장관이 언론에 발표한 상황을 감안할때 이러한 가능성은 매우 희박해 보인다.

이보다는 실제로 베네수엘라 정부는 이번 프로젝트 사업자 선정을 원점으로 돌리겠다는 입장을 정리한 뒤 장관이 공식적으로 이를 발표했을 가능성이 커보인다.

이러한 배경에는 우선협상대상자 선정에서 탈락한 경쟁 업체들의 집요한 음해 및 방해공작이 작용했을 것으로 현대정보기술은 분석하고 있다.

특히 최근 하이닉스 반도체 등 현대그룹 계열사들의 잇따른 유동성 위기 사태로 인해 현대정보기술의 재무 건전성이 의심을 받게 됐으며 이것이 우선협상자 선정 파기를 주장하는 세력을 위한 빌미가 됐을 수 있다는 것이 현대정보기술측의 추론이다.

지난 1월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이후 베네수엘라 국회에서 일부 의원들이 이 문제를 제기했으며 감사위원회의 요청에 따라 현대정보기술이 지난 7월 감사보고서를 제출했었다.

하지만 7월 감사보고서 제출건도 무리없이 통과돼 현대정보기술은 `최종 계약체결 임박''이라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배포할 정도로 계약 체결을 확신했었다.

이번 조치는 현지 마피아들과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 현대정보기술의 또 하나의 추론이다.

주민등록증.여권을 위조해 판매하는 것이 현지 마피아의 주요 수입으로 이번 조치는 전자주민카드 프로젝트 착수를 늦추기 위한 마피아들의 대정부 로비가 작용했을 수도 있다는 것.

▲ 현대정보기술 및 정부의 대응책 = 현대정보기술의 김선배 대표이사는 지난달 30일 현지 프로젝트 추진팀을 격려하기 위해 베네수엘라를 방문, 체류하던 중에 이번 사태를 접하고 직접 사태수습을 지휘하고 있다.

현대정보기술은 아직 확정된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여전히 이번 프로젝트를 수주할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는 것이 대외적인 입장이다.

김 대표는 "아직 구체적으로 결정된 것은 없다. 국내 언론에는 좀더 지켜봐달라고 하라"고 지시했다고 현대정보기술 관계자는 전했다.

현대정보기술은 이번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파기가 확정되면 베네수엘라 정부가 아니라 UN 등 국제 기구에 의해 재입찰이 진행될 것으로 보고 있으며 재입찰에도 다시 응찰하겠다는 입장이다.

최악의 경우 현대정보기술이 이번 입찰에서 탈락할 경우 베네수엘라 정부를 상대로 우선협상대상자 파기에 따른 회사의 경제적 손실 및 명예 훼손에 대한 국제소송을 제기한다는 방침이다.

한편 정보통신부도 이번 베네수엘라 정부의 조치에 대해 정확한 사실 파악에 나섰으며 사실로 확인될 경우 그에 따른 정부차원의 대책을 강구한다는 입장이다.

특히 양승택 정보통신부 장관이 이달말이나 다음달초 베네수엘라를 방문, 대규모 정부 발주 프로젝트에 국내 업체들의 참여 기회 확대를 요청한다는 계획을 검토 중이어서 베네수엘라 방문이 이뤄질 경우 이번 현대정보기술의 우선협상대상자 파기조치가 양국간의 현안으로 부상할 것으로 보인다.

(서울=연합뉴스) 박창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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