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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인터넷·언론, 수술 실패사례 줄폭로… 피해자가 1인 원정 시위도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지난달 20일 중국인 여성 왕방(王邦·가명·31)이 한국 땅을 밟았다. 의료소송을 위해서다. 왕은 3년 전 한국에서 눈·코와 양악수술을 받았다. 비용은 1억원. 당시 VIP 고객만 상대한다는 브로커는 병원 브로셔를 내보이며 ‘한국 최고 의료진으로 구성됐고, 역대 대통령도 수술받은 곳’이라고 소개했다. 재산가로 알려진 왕의 부모는 흔쾌히 수술을 허락하고 돈을 건넸다. 하지만 결과는 엉망이었다. 쌍꺼풀은 라인이 너무 크고 흉터가 심해 누가 봐도 수술한 티가 났다. 앞트임(눈 앞을 찢고 꿰매 눈이 커 보이게 하는 수술)을 과도하게 해 흰자위가 많이 보여 인상도 사나워졌다. 심각한 건 눈을 잘 감을 수도 없다는 것. 턱수술은 양쪽을 잘못 깎아 비대칭이 됐다.

원장을 만나러 수술 두 달쯤 뒤 한국에 왔지만 병원은 간판이 바뀌어 있었다. 물론 원장도 다른 사람이 앉아 있었다. 왕씨와 가족들은 문제의 한국 의사를 꼭 찾고, 재수술도 알아볼 겸 한국을 다시 찾았다.

늘어나는 중국인 성형 의료분쟁
왕의 사례는 빙산의 일각이다. 중국의 대표적인 성형 정보 공유 사이트인 ‘핑크베이비(www.pink-baby.net)’에서는 한 달에 수십 건씩 한국 성형시술의 부작용에 대한 글들이 올라온다.

‘예쁜 바보(漂亮的蛋)’라는 아이디의 한 중국인은 “한국에서 성형수술 건수가 가장 많다는 곳이었는데 속은 것 같다. 광대뼈 절개술을 받았는데 흉한 몰골이 됐다. 한국이 정말 싫다”고 썼다. 아이디 ‘Coffeebar’를 쓰는 중국인은 “쌍꺼풀 수술을 했는데 한쪽은 흉터가 너무 진하고 한쪽은 쌍꺼풀이 수술 안 한 것처럼 희미하다. 돈도 원래 가격의 몇 배나 많이 주고 했다. 사기를 당한 것 같다”는 글을 남겼다.

중국 최대의 검색 사이트 바이두(baidu.com)에서는 ‘한국 성형수술 실패 부지기수’ 등의 제목을 단 글을 쉽게 찾을 수 있다. 방송·신문도 마찬가지다. 지난 1월 국영 중국중앙TV(CC-TV)는 중국인의 한국 성형관광 열풍에 대해 보도했고, 3월에는 중국 관영신문 ‘인민일보(人民日報)’가 중국 관광객들이 한국 성형외과와 중개업자들의 돈줄로 전락했다는 기사를 냈다.

급기야 지난봄에는 양악수술이 잘못됐다며 한 중국 여인이 서울 압구정동의 해당 성형외과 앞에서 피켓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성형을 위해 한국을 찾는 외국인의 절반은 중국인이다. 전문가들은 부실 성형의 제1원인으로 ‘불법 브로커’들을 지목한다. 정상적인 유지업자들은 보건산업진흥원에 등록을 하고 10~15% 정도 수수료를 낸다. 하지만 불법 브로커들은 점조직 형태로 운영되고 세금도 내지 않는다. 의료사고가 나도 병원을 잘못 알선한 데 대해 책임을 지지 않는다.

이들은 환자를 모을 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한국 최고의 성형외과, 대통령도 수술한 병원 등 근거 없는 미사여구를 붙여 병원을 소개한다. 수수료가 목적이다 보니 이들이 접촉하는 병원의 기준은 실력이 아니라 수수료를 얼마나 주는지가 관건이다.

이들과 거래하는 병원도 공생관계다. 한 성형외과 전문의는 “수수료를 많이 떼주는 곳일수록 약점이 있는 병원일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개원한 지 얼마 되지
않았거나 비전문의 또는 의료사고를 여러 번 내서 이름을 자주 바꾸는 병원 등이다. 이런 병원은 브로커에게 수수료를 많이 주더라도 환자를 받는 게 이득이다. 브로커 몫을 한 움큼 떼주다 보니 수술 재료나 기구도 싼 것을 쓸 수밖에 없다. 애초부터 부실 성형이 잉태되고 있는 셈이다.

전문성도 문제다. 성형외과 전문의라도 부위마다 일정 수준에 도달하려면 권위자 밑에서 몇 년은 익혀야 한다. 그런데 어떤 병원에서는 비전문의 원장이 눈·코·가슴·안면윤곽까지 다 하는 경우도 있다. 부작용이 생길 수밖에 없는 구조다.

최근 크게 늘어난 성형외과 의사들의 원정 진료·수술도 문제다. 가슴성형을 전문으로 하는 M성형외과 원장은 “한 번은 중국에서 초청이 와서 토요일 아침 비행
기를 탔는데 옆자리 네댓 명이 모두 알고 지내는 성형외과 의사라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이런 초청행사의 상당수는 현지 브로커들이 환자를 모집한 경우다. 주말 이틀간 수십 명을 수술하는 경우는 예사이고, 환자를 보느라 의사가 수액 주사를 맞아 가며 일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고 한다. 이런 과로가 부실 수술로 연결될 가능성도 크다. 불법 브로커도 끼어든다. 대한성형외과의사회 홍정근 홍보이사는 “온갖 사탕발림을 해 한국 의사를 초청한 뒤 제때 돈을 지급하지 않는 경우까지 있다”고 말했다. 또 의사들이 이런 초청 진료를 하려면 중국 정부에서 단기면허를 받아야 하는데, 현지 브로커가 이를 해결해 주지 않는 경우도 있다. 의료분쟁이 발생할 경우 의사가 모두 책임을 져야 하는 경우다.

성형외과 의사들 해외 원정수술도 문제
보건복지부의 대책 마련은 굼뜨다. 복지부가 지난달 31일 발표한 ‘글로벌 헬스케어 활성화 방안’에는 해외 환자 유치시장의 투명성·책임성을 제고하는 방안이 담겨 있다. 복지부 보건산업정책과 관계자는 “중대한 시장교란 행위를 유치업자 등록 취소 요건으로 추가하고, 취소를 당할 경우 2년간 재등록을 하지 못하도록 했다”고 말했다. 또 의료기관이 미등록 유치업체와 거래하면 해외 환자를 치료할 자격(유치기관) 등록을 취소하는 방안 등을 의료법 개정안에 담아 입법 예고한 상태다. 개정 의료법이 언제 통과할지도 불투명하지만 다단계·점조직으로 움직이는 불법 브로커들을 의료법만으로 모두 단속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의료사고에 대한 해결책도 부족하다. 가장 유력한 방안은 의료기관들이 민간 손해배상보험(의료배상 책임보험)에 가입하는 것이다. 의료관광 선진국인 싱가포르는 물론 말레이시아나 태국 등이 가장 잘 돼 있는 게 민간 손해배상보험 등 안심할 수 있는 진료 시스템이다. 하지만 국내 병원들의 보험 가입률은 매우 낮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에 따르면 2010년 말 기준 전체 병·의원의 가입률은 36.4%에 불과하다. 특히 외국인 환자 유치 병원 2091개(2010년 기준) 중 보험에 가입한 비율은 5% 정도에 불과하다. 보상 한도도 낮다.

삼성화재 관계자는 “국내 병원이 가입한 보험 중 연간보상 누적액이 가장 많은 곳이라야 미화 100만 달러(약 11억원) 수준”이라며 “최소 200만 달러 이상인 말레이시아보다 못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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