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신보경의 중국기업인열전 ③] 붉은 모자를 쓴 창업가, 장시페이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희망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창부(娼婦).
아무에게나 아양을 떨어서 모든 것을 바치게 하고
네가 많은 보물 ? 너의 청춘 ? 을 잃었을 때
그녀는 너를 버린다.

루쉰『야초(野草)』 중 “희망” (1925년 1월1일)

루쉰의 말처럼 희망은 때론 잔인하다. 그러나 성공한 창업자들 중에는 꿈이 한 순간 물거품이 될지라도 희망의 창으로써 어둠을 메워 보려고 시도하는 사람도 있다. 중국 케이블 업계의 거인 위안둥집단(遠東集團) CEO ‘장시페이(蔣錫培?49)’도 그런 사람 중 하나이다. 중국 언론들은 그를 가리켜 붉은 모자(紅帽子, 공산주의자)를 쓴 사업가라고 한다. 흔히 중국에서 붉은 모자는 정부소유의 기업을 뜻한다.

장시페이는 1990년 큰 형의 도움으로 케이블 전선 판매 사업에 뛰어들어 지금의 위안둥집단을 세웠다. 그러나 모든 창업이 그렇듯 가장 골치거리는 돈이었다. 가족과 친인척에게 빌린 자금은 늘 바닥나기 일쑤였고, 당시 사기업으로 대출은 꿈도 못 꾸었다. 그런 그가 선택한 유일한 방법은 기업체를 집체기업(集體企業?사기업과 국가에 의한 소유와 경영이 이루어지는 국유기업의 중간형태)으로 전환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3년 후 지방정부 관하의 집체기업에 대한 부정적 평가가 거세지면서 회사는 존폐의 위기에 몰렸다. 고심 끝에 그는 피(被)인수 방식을 통해 본인을 포함한 직원들이 회사의 지분 95%를 확보하도록 하는 주주합작제(종업원지주제도)로 전환했다. 당시로써는 회사의 장기 안정 지분 확보를 위한 가장 유리한 결정이었다.

회사가 자금난에서 벗어날 즈음 그의 발목을 잡는 것은 시장이었다. 당시 중국은 대규모 전력사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이 거대한 시장을 잡아 전력 케이블을 판매해야겠다는 그의 노력은 필사적이었다.

당시 중국의 대형 국유기업들은 전력시장은 모두 독점하고 있었고, 장시페이는 자신의 지분 일부를 화넝궈지(華能國際) 등 4대 전력국유기업에게 무상 양도해 혼합소유제(국영 주주 이사회가 있는 기업의 지배구조)로 전환했다. 덕분에 그는 전국의 대규모 전력망 개조사업에 참여할 수 있었고, 이는 위안둥 발전에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2002년 장시페이는 집체와 국유기업 지분을 모두 회수하고 다시 민영기업으로 전환했다. 그리고 그는 연매출 200억위안(약3.5조원)이 넘는 중국 케이블 업계의 거인이 되었다.

그는“ 당시 나는 어떤 방식이 기업의 발전에 유리할까에 대해서만 생각했지 다른 것은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네 차례(사기업→종업원지주기업→혼합소유기업→사기업)나 기업체제를 전환하게 됐다”고 말한다.

그는 성공한 기업가일 뿐만 아니라 자신과 같은 길을 걷는 다른 창업자들에게도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특히 나름대로의 포부와 총명함을 지닌 젊은 창업자들에 대한 애정은 남다르다. 대표적으로 화상사이트인 Mysee 창업자이자 바링허우(80後, 1980년대생)의 대표적 부호인 가오란(高燃·32)의 든든한 후원인 이기도 하다. 그만큼 ‘희망’ 하나로 버티는 창업자의 시련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신보경 한화생명 경제연구원 수석연구원은 중국 상하이 푸단(復旦)대학에서 국제경제를 전공했으며, 현재 중국 경제 및 기업을 연구하고 있다. shinbo20@naver.com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