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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 나선 검찰 vs 아래서 나선 경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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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김광준(51) 서울고검 검사의 9억원대 금품수수 사건 수사를 둘러싸고 검찰과 경찰이 대응방식에서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검찰이 잇따른 수뇌부 회동을 통한 위기 탈출 방안 짜내기에 주력하는 반면, 경찰은 일선 경찰관 차원의 ‘각개격파식’ 대응으로 검찰을 압박하고 있다. 상명하복이 생명인 두 수사기관의 해법이 다른 것에 대해 법무부의 한 검사는 “김 검사 사건에 관한 한 검찰이 대국민 여론 등에서 수세, 경찰이 공세적인 입장이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18일 법무부와 검찰 등에 따르면 권재진 법무부 장관과 한상대 검찰총장은 이번 김 검사 사건은 검찰 조직에 미치는 악영향이 과거 어느 사건보다 크다는 데 인식을 같이 하고 있다. 검사가 내사·수사 중인 사건과 관련해 10억원에 가까운 금품을 받은 건 사상 초유의 일이다. 특히 여야 대선주자들이 이구동성으로 대검 중수부 폐지 등 검찰 개혁을 공언하고 있는 마당에 터져 체감 충격은 더 클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권 장관은 지난 16일 저녁 서울 강남의 한 호텔에서 전직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 30여 명을 초청해 만찬 회동을 했다. 이 자리에서 원로들의 쓴소리가 쏟아졌다. 배명인(80) 전 장관은 “검찰이 스스로 엄하게 하지 않으면 신뢰받기 어렵다. 자정 능력을 키워야 한다”고 주문했다. 다른 장관·검찰총장들도 “지금은 잠시만 방심해도 조직이 뿌리째 흔들릴 수 있는 시기”라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고 한다.

 한상대 검찰총장도 일선 검찰청 검사장들과 일주일에 한 번씩 만찬회동을 하고 있다. 15일 재경 지검장 5명이 참석한 첫 모임에 이어 22일에는 전국 고검장들과 만찬회동을 한다. 겉으로는 정치권의 검찰 개혁 움직임에 대한 대응논리를 마련하는 자리라지만 김 검사 사건 이후 불신 해소책이 안 나올 수 없다는 관측이다. 검찰 내부에서는 “검찰총장이 대국민 사과를 해도 모자랄 사안”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한 일선 고검장도 “검찰 수뇌부가 사태의 심각성을 깊이 인식하고 있으니 지켜봐 달라”고 말했다.

 이와 대조적으로 경찰은 수뇌부보다는 일선 경찰관들을 중심으로 게릴라식 반발을 이어가고 있다.

 경기지방경찰청 정승혁(34) 순경은 지난 11일 영화 ‘매트릭스’를 패러디한 동영상을 유튜브에 올려 검찰을 비판했다. 주인공 네오 일행은 경찰로, 이들을 말살하려는 스미스 요원은 특임검사에 빗댔다. 자막에서는 ‘경찰은 검찰의 하수인이 아니다’는 등의 내용이 담겼다. 현재 4400여 건의 조회수를 기록 중이다.

 경기도 화성서부경찰서 조성신(30) 순경도 16일 영화 ‘타짜’의 일부 장면을 편집해 ‘수사권 타짜 패러디 영상’이라는 동영상을 유튜브에 올렸다. 같은 날 세종시에서는 일선 경찰 100여 명이 참석한 긴급 토론회가 열렸는데 검찰을 나치로 표현한 동영상이 상영되기도 했다. 경찰들의 1인 시위도 이어지고 있다.

 경찰 수뇌부는 이를 적극적으로 말리지 않고 있다. 이번 수사를 총괄했던 황운하(50) 전 경찰청 수사기획관을 16일 경찰수사연수원장으로 발령 낸 후 사태를 관망하고 있다. “일선 경찰들의 자발적인 의견 개진을 막을 명분이 없다”는 이유에서지만 속으로는 즐기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편 김수창 특임검사팀은 김 검사가 서울중앙지검 특수3부장으로 있던 2008년 당시 서울증권(유진투자증권) 직원들의 비리를 내사하다가 중단한 사실을 확인하고 대가성을 확인 중이다. 김 검사는 19일 구속영장실질심사를 거쳐 구속 여부가 결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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