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은영화찾기]LP음악 따라 흐르는 사랑의 변주곡 '소친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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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P음악과 올드팝만을 고집하는 인기 DJ 쯩영(궈푸청.郭富城), 틈만 나면 골동품상을 들락거리고 낡은 물건도 도무지 버릴 줄 모르는 신세대 칼럼니스트 루나 오(천후이린.陳慧林). 잘 어울릴 것 같은 두 사람의 만남은 하지만 처음부터 삐걱거린다.

자신의 이름을 새겨 옛 애인에게 선물했던 LP판을 골동품상 구석에서 발견한 루나는 그 판을 다시 사려하지만 이미 다른 이가 한 발 앞서 예약한 상태다. 사정을 말하고 그 사람을 설득해보지만 그것도 허사. 어쩔 수 없이 발길을 돌린다.

그리고 그 날 저녁 우연히 귀를 기울인 라디오프로 'LP특급'에선 그 음악과 함께 자신의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첫 사랑의 추억이라지만 그 사람을 위해 일부러 판을 양보하지 않았다. 물론 분노 때문에 부서질지 모를 음반을 보호하는 것 역시 DJ의 의무"라며 쯩영은 원하는 것을 갖지 못하는 '유감의 미학'을 운운한다.

불 같은 성격의 루나는 곧바로 자신의 칼럼을 통해 안하무인의 쯩영을 원색적으로 비난하고 두 사람은 둘 도 없는 라이벌이 되어 전쟁을 시작한다. 그리고 팬들의 관심 속에 쯩영의 프로에 게스트로 출연한 루나 오는 방송 중에 스튜디오를 박차고 나오는 사고까지 일으킨다.

1998년 데뷔작 '친니친니'로 '올해의 홍콩 예술가상'을 수상하는 등 비평과 흥행면에서 큰 성공을 거두며 홍콩 멜로영화의 새 전형을 제시했던 시중원(奚仲文) 감독의 2000년 영화 '소친친'은 전작을 능가하는 속 깊은 매력이 숨어있다.

견원지간, 서로를 잡아먹지 못해 안달인 두 남녀가 연인이 될 수 있을까? 감독은 이런 두 사람의 얘기를 기름기 없이 담백한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풀어낸다. 억지로 꾸미지 않은 피곤한 삶 속에서 발견하는 사랑은 훨씬 달콤하고 긴 여운을 남긴다.

제대로 글이 써지지 않아 신문 편집장에게 해고 명령을 듣고 웹 카운셀러의 기회도 날려버린 루나, 그나마 믿었던 애인의 배반까지 목격한 그녀는 심각한 슬럼프에 빠진다. 쯩영 역시 프로그램이 폐지되는 수모를 겪지만, 복수를 위해 루나의 글을 탐독하던 중 그녀의 섬세한 내면을 발견하곤 연민을 느낀다.

마음을 열고 루나를 향해 한 걸음 다가선 쯩영, 하지만 그녀의 곁엔 이미 잊혀졌던 첫사랑이 돌아와 있고, 이별이 눈 앞에 다가왔지만 막 싹 트기 시작한 두 사람의 애정은 도무지 맺어질 기미가 안보인다.

두 배우의 인간미 넘치는 캐릭터도 보는 재미를 더한다. '친니친니'에 이어 홍콩 최고의 스타 궈푸청과 다시 호흡을 맞춘 천후이린의 연기는 제자리를 찾은 느낌이다. 헝클어진 머리 화장기 없는 수수한 얼굴로 그려내는 루나 역은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담아낸 듯 생동감이 넘친다.

드러나지 않은 홍콩의 풍경을 구석구석 훑어가며 아름답게 재구성한 화면과, 중요한 대목마다 흘러나오는 냇 킹콜, 에디트 피아프의 올드 넘버들은 객석을 낭만으로 물들인다. '사랑의 묘약' 처럼, 다가서지 못하는 남녀를 가을의 연인으로 묶어줄 영화다. 9월15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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