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해외매각 협상 제대로 하라

중앙일보

입력

현대투신증권의 정상화를 위한 매각협상이 양해각서(MOU)체결 하루 만에 다시 꼬인 것은 외국자본을 상대로 하루빨리 해결해야할 부실과제를 줄줄이 안고 있는 우리 현실에서 여간 씁쓸한 일이 아니다.

현투를 사들이기로 한 아메리칸인터내셔널그룹(AIG) 컨소시엄이 왜 주당 8천9백40원에 우선주를 발행하기로 한 현대증권측의 결정을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돌출적 행동을 했는지 우리로선 그 배경을 알기 어렵다.

어떤 협상이든 상대는 있게 마련이며 앞으로의 본협상에서 주도권을 쥐기 위한 AIG측의 전략이라고 볼 수 있다.

문제는 가뜩이나 헐값매각 시비에 입장이 더 곤혹스러워진 정부다. 그러지 않아도 정부는 현투 매각과정에서 프리미엄없이 10% 할인발행한데다 우선주에 의결권을 부여, 우회출자의 허용 등 여러 혜택을 부여했다.

협상을 원만히 매듭지으려는 노력이라 해도 증권관련 법규를 최대한 긍정적으로 해석해 특혜를 준 것은 분명하고 이런 면에서 AIG측의 행동은 가격 후려치기로 비판받아 마땅하다.

협상이란 타결에만 집착하다보면 조건만 불리해지고 상대에게 밀리게 되어 일만 겉도는 수가 많다.

제일은행의 매각과정이 매끄럽지 못해 여전히 공적자금을 부어넣어야 하는 것도, 비슷한 사례가 꼬리를 무는 점도 이런 협상 미숙이 개선되지 않은 채 헛다리를 잡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로선 더구나 이번 협상에선 경제가 급속히 가라앉는 가운데 대우자동차.서울은행 매각 등 불안요인을 제거해야 한다는 조바심에 쫓기는 형국까지 보여주었다.

경제가 어렵다 싶으니 정책도, 경제관료들도 중심을 잡지 못하고 휘둘리는 모습이 갈수록 더 심하다.

경제에 관해 우울한 소식만 전하게 돼서 그런지 호재가 있다 싶으면 좀처럼 입을 다물지 못한다.

이번 현투 매각만해도 한달 가까이 곧 타결될 것이라며 중계방송을 하듯 하고 발표 당일엔 부총리까지 나서 한 조찬강연에서 결과를 오늘 발표할 수 있다고 말한 게 그 사례다.

그러니 경제관료들이 성과가 있는 일이면 앞장서 생색을 내려하고 그러다 일이 삐끄덕해서 졸속처리라는 비난을 받아도 할 말이 없게 되는 것이다.

현투의 매각에는 향후에도 많은 난제가 도사리고 있어 결과를 쉽게 예단하기는 힘들다. 정부측은 이번 양해각서에는 이미 상당한 합의내용을 담겨 있어 과거 여타협상과는 다르다 하나 결렬 가능성은 여전히 열려 있고 위약금을 받게 되어 있지도 않다.

여기에 신주발행으로 주가가치가 떨어지게 된 현대증권의 소액주주들도 참여연대의 힘을 빌려 문제를 제기할 움직임이다.

당연히 협상에는 여러 수단이 열려 있어야 하며 외길만 쫓다가 상대에게 휘둘려서는 곤란하다.

그러나 한편으론 대우자동차와 한보의 매각 지연이 지금까지 어떤 손실을 당해기업은 물론 우리 경제에 끼쳤는가를 망각해서도 안될 것이다.

금융과 기업구조조정에 외자유치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이유다. 이제부터야말로 협상이 타결과 무산될 때를 냉정히 저울질하며 정부는 물론 모든 이해당사자들이 현투 해결에 최선책을 찾는 데 지혜를 모아야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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