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달새 e-메일 500통 오갔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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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그리고 그 안에 배어 있는 경험은 많은 것을 말해준다.

각각 첫 결혼에서 좌절을 겪은, 이제 중년이란 말이 어색치않은 나이가 된 한 방송인과 금융인의 결혼 발표는 의외로 차분했다. 더 이상 불필요한 추측에 시달리는 것이 싫어 언론에 나섰을 뿐 그들이 원하는 건 '사생활의 보호' 였다.

MBC '뉴스 데스크' 앵커 출신의 방송인 백지연(白智娟.37)씨와 국제금융인 송경순(宋慶淳.50.경제학 박사)씨가 결혼 계획을 23일 공식적으로 밝혔다.

두 사람은 宋씨의 출국을 하루 앞두고 중앙일보와 가진 단독 인터뷰에서 "날짜와 장소는 확정하지 않았지만 최근 양가 상견례를 갖고 연내에 결혼하기로 했다" 고 말했다.

결혼식도 조촐하게 치를 계획이라고 밝혔다. 어떻게 하면 경건하고 의미있게 식을 올릴 수 있을까 고민한다는 두 사람은 가족들과 여행 겸 해외로 나가는 방안도 고려 중이라고 말했다.

연예인 못잖은 인기를 누려온 白씨는 물론 미국 워싱턴에서 투자.금융 자문회사를 운영하는 宋씨도 경제계에선 제법 알려진 인물이다.

宋씨는 경제기획원에서 근무하다 일찍이 국제금융계에 뛰어들었으며 중국전문가로서 세계은행 부총재 자문역과 일본 노무라 그룹의 프로젝트 금융사 수석부사장도 거쳤다. 한국인으로선 세계은행에서 가장 높은 위치에 오른 사람이다.

두 사람 모두 이번 결혼이 두번째다. 특히 白씨는 전 남편과의 문제로 법정에 서야 하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宋씨도 10년 전 이혼한 뒤 혼자 살면서 회사 일에만 몰두했다고 한다.

이런 두 사람이 서로를 알게 된 건 지난 1월 중순.

"차분하고 합리적인 두 사람의 성격이 잘 맞을 것 같다" 며 한 국내 지도층 인사가 소개해줬다.

처음에 白씨가 누군지 몰라 망설였던 宋씨는 지난해 출간된 白씨의 자전적 에세이 『나는 나를 경영한다-백지연의 선택』을 읽고 감동했다고 한다. 이에 宋씨가 자신의 이력과 가치관 등을 빼곡이 담은 문서를 인편으로 보내왔고 白씨의 마음도 조금씩 열렸다.

몸이 각각 서울과 워싱턴에 있었지만 e-메일이 태평양을 건너 두 사람의 사랑을 이어줬다. 아무리 바빠도 하루에 몇번씩 서로 편지를 보낸 게 이날로 5백통이 넘었다고 한다. 특히 한글타자에 초보인 宋씨는 몇 시간에 걸쳐 직접 한글자판을 쳤고, 이런 배려가 白씨의 마음을 결정적으로 움직였다.

인터뷰 내내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며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어떤 점이 그렇게 마음에 드느냐" 고 물었더니 "합리적이고 포용적인 면" (백지연), "지적이고 성숙한 모습" (송경순)이라고 대답했다.

결혼 후에도 두 사람의 생활이 크게 달라지지는 않을 듯하다. 현재 MBC 다큐멘터리 '우리시대' 를 진행하고 있는 白씨는 가을 개편을 앞두고 여러 방송사로부터 출연요청을 받고 있다. 宋씨도 지금과 마찬가지로 서울과 워싱턴을 오가며 투자자문 일을 계속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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