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남아도는 쌀 농가 · 정부 깊은 주름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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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년 농사가 되면 뭘 합니까. 팔지 못한 쌀이 창고마다 넘쳐나는데…. "

추수기가 다가오면서 들녘에 누렇게 익어가는 벼를 바라보며 대풍(大豊)의 꿈을 키워야 할 농가마다 '남아도는' 쌀 때문에 걱정이 태산이다.

쌀 재고처리에 비상이 걸렸다.

식생활 변화에 따른 쌀 소비량 급감(별표 참조)으로 쌀이 남아돌면서 올해 말엔 재고가 무려 1천만섬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전국의 정부미 보관창고와 농협 미곡종합처리장(RPC)등은 넘쳐나는 쌀로 포화상태다. 특히 올 연말에는 늘어나는 쌀 재고로 가격마저 가마당 2만원 이상이나 떨어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어 자칫 농가경제의 위기로까지 번질 우려도 있다.

1백평 규모의 창고 3개동(棟)을 갖추고 있는 경북 의성의 안계농협 미곡종합처리장.

지난해 이맘땐 이 곳에 거의 없던 쌀 재고가 올해에는 벌써 8백t을 넘어섰고, 추곡수매가 끝나는 연말에는 2천t 이상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한다.

이상열(52)소장은 "최근 3년 동안 쌀 판매량이 30~40% 줄어들면서 최근 매년 1억원 이상의 적자를 보고 있지만, 농가의 쌀 수매를 마냥 외면할 수도 없어 걱정" 이라고 털어놓았다.

농림부에 따르면 올해는 풍년이 예상됨에 따라 쌀 생산목표(3천5백50만섬)달성이 무난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세계무역기구(WTO)의 농업 보조금 금지조치로 정부의 추곡수매 규모가 해마다 줄어들어 올해에는 지난해보다 50만섬이 줄어든 5백75만섬밖에 수매할 수 없다. 여기에다 농협 등 민간 RPC의 수매량도 7백만섬 안팎에 그칠 것으로 예상돼 재고처리가 현안으로 등장했다.

지난해부터 쌓인 재고물량만도 6백29만섬에 달한다. 올 수매후에는 연간 생산량의 30%(1천만섬 수준)에 달할 것이라는 게 농림부의 예상이다.

이는 세계식량기구(FAO)가 적정 재고량으로 권장하고 있는 연간 생산량의 17~18%(5백50만섬~6백만섬)수준을 훨씬 웃도는 수치다. 이러다 보니 쌀 보관비용만도 1천억원(2000년 기준)을 넘어섰다.

수확기인 11월 전후와 단경기인 8월 전후의 계절간 쌀 가격차도 1999년 7.9%에서 올해에는 1.3%로 줄어들면서 민간 RPC의 경영악화로 이어지고 있다.

연리 5%의 쌀 수매 정책자금으로 추곡수매에 나서더라도 나중에 팔때 이자는 고사하고 보관료도 나오지않는다. 이에 따라 농협의 경우 전국의 1백99개 RPC 중 72%가 경영손실로 적자를 보고 있어 올 추곡수매도 어려운 실정이다.

전국의 농협조합장으로 구성된 농산물수매대책위원회는 21일 성명서를 내고 소비부진과 재고누적으로 올 수확기에 가격폭락 사태가 예견되는 쌀에 대한 긴급대책 수립을 정부에 촉구했다.

정부도 21일 열린 경제장관회의에서 이달 말까지 쌀문제에 대한 정부대책을 발표하기로 했다.

특히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20일 국무회의에서 쌀 가격 유지대책을 강구하고, 경제성 있는 쌀 관리 방법도 강구하라고 지시했다.

홍병기 기자 klaatu@joongang.co.kr>
사진=김성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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