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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콘’ 무섭지 않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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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코미디 빅리그’를 이끄는 김석현 PD. 10년 넘게 코미디쇼를 만드는 힘을 묻자 “게을러서 다른 콘텐트를 많이 보지 못하지만, 사람들을 유심히 관찰하는 것은 게을리하지 않는다”고 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공개 코미디쇼의 제왕은 누가 뭐래도 ‘개그콘서트(이하 개콘·KBS)’다. 이 견고한 개콘에 도전장을 내민 프로그램이 있다. 지난해 9월 시즌제로 시작해 1년 만에 정규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은 ‘코미디 빅리그(이하 코빅·tvN)’다.

 ‘코빅’과 ‘개콘’은 여러모로 비교될 수밖에 없다. ‘리그제’ ‘1대1 대결’ 등 경쟁제도 도입, 그 치열함이 가져온 웃음 덕에 ‘코빅’은 케이블이란 한계에도 ‘개콘’에 여러 차례 잽을 날렸다. “이런 면~접 같은” “민식이냐?” 등의 유행어가 나왔고, 시청률은 동시간대 케이블 채널 1위다.

 ‘코빅’의 성공 뒤에는 김석현 PD(41)가 있다. 지난해 KBS에서 CJ E&M으로 이적하기 전까지, 8년 여간 ‘개그콘서트’ 연출을 맡아왔던 그다. 6일 서울 상암동 CJ E&M센터에서 김 PD를 만났다.

 - 1년 만에 성공적인 안착이다.

 “본의 아니게 지상파에서 케이블로 옮긴 PD들 중 첫 번째로 시험대에 올랐다. 다행히 함께하는 친구들이 최선을 다해줘서 결과가 좋았다.”

 - 어쩔 수 없이 ‘개콘’과 비교된다.

 “친정에 누를 끼치고 싶지 않았다. 지금은 경쟁자로 생각한다.” (웃음)

 김 PD의 부담감은 컸다. 그래서 택한 게 경쟁의 도입이었다. 1등부터 순위를 매기는 방식으로 시즌1을 시작했다. 개그 대결은 더 치열해졌고 유세윤·안영미 등은 잠재력을 폭발시켰다. 이번에는 1대1 대결이다. 공연을 마친 두 팀이 곧바로 500여 명 방청객의 평가를 받아 승패를 정한다.

‘개불’ 팀의 양세찬(왼쪽)과 이용진.

 - 왜 경쟁인가.

 “사실 개콘 같은 전통적인 진행이 편하다. 업무량도 반으로 줄고. (웃음) 하지만 뭔가 다르게 보이고 싶은 강박관념이 있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는데, 힘들어하는 개그맨도 많다. 직장인이 영업성적을 매주 평가받는 격이니까….”

 - 생활밀착형 개그가 눈에 띈다.

 “1990년대 후반에는 남장여자처럼 캐릭터의 비주얼이 강해야 떴다. 그러다 ‘갈갈이 삼형제’처럼 객석을 바라보는 스탠딩 개그로 유행이 옮겨갔고, 요즘은 생활밀착형이 대세다. ‘코빅’의 강점은 똑같은 생활 속 이야기를 해도 현미경으로 들여다본 것처럼 아주 세세하게 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이개인’ 팀(이국주·문규박)은 뚱뚱한 연인의 에피소드를 소재로 삼는다. 뚱뚱한 사람을 소재로 한 개그는 많지만, 연인에 초점을 맞춘 것은 없었으니까.”

 ‘코빅’의 또 다른 의미는 잘 나가는 스타개그맨의 집합소가 아니라는 데 있다. 김 PD는 한때 최고의 인기를 얻었지만 잊혀진 이들, 무대가 없어 설 곳이 없었던 개그맨을 모두 품었다. 가령, 박승대와의 갈등·폭로전으로 한동안 무대에 서지 못했던 성민은 최근 ‘까푸치노’ 팀에서 승승장구 중이다. 외인구단의 개가인 셈이다.

 - 처음엔 막막했을 텐데.

 “ 스타일을 맞춰가는 게 쉽지 않았다. 예를 들면 SBS 출신들은 쉴 새 없이 떠들며 웃기는 스타일이고 KBS쪽은 좀 느리게 가다가 한 방 때리는 식이었다. 1년 동안 부대낀 덕에 지금은 서로 믿고 의지한다. 예전의 나라면 ‘까푸치노’처럼 무대에서 까부는 식의 개그는 올리지 않았을 거다. 하지만, 이 친구들과 호흡을 맞춰보면서 이런 코드가 의외로 큰 웃음을 준다는 걸 알게 됐다.”

 - 스스로 즐겁나.

 “‘스폰지’ ‘미녀들의 수다’ 등 다른 프로그램도 많이 했는데, 코미디를 할 때 비로소 내가 일을 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10년이 넘도록 하는 것 같다. 기회가 닿는다면 진짜 웃긴, 시트콤다운 시트콤을 만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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