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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평 공간의 24가지 변신 ‘트랜스포머 아파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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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로봇인가, 아파트인가. 홍콩 건축가 개리 창의 초소형 아파트는 영화 ‘트랜스포머’를 연상시킨다. 욕조가 있는 스파 공간, CD와 책이 꽂힌 서가 등 아코디언처럼 겹쳐진 벽 사이사이에 새로운 공간이 숨겨져 있다. 천장에는 거울을 달아 공간을 넓어 보이게 했다. [사진 엣지 디자인 인스티튜트]

어릴 적, 그에겐 방이 없었다. 너비 4m에 깊이 8m, 전용면적 32m²(9.68평)의 초소형 아파트에 부모님과 세 여동생, 그리고 20대 하숙생까지 총 7명이 북적이며 살았다.

 좁다란 거실이 잠자리였던 소년은 낮에는 소파 뒤로 숨겨놓을 수 있는 작은 접이식 침대를 직접 만들었다. 이 같은 경험은 그의 건축세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 공간 활용에 대한 기발한 아이디어로 세계적 명성을 얻고 있는 홍콩 건축가 개리 창(Gary Chang·50) 이야기다.

개리 창

1988년 가족들이 이사를 나간 후 그는 홀로 이 집에 살고 있다. 지난달 29일, 홍콩의 주택밀집지역 사이완호에 있는 그의 아파트를 방문했다. 60년대 지어진 17층짜리 낡은 아파트. 7층에 있는 그의 집에 들어서니 원룸 형식의 뻥 뚫린 공간이 손님을 맞는다. 현관 맞은 편 벽에 큰 창문이 있고, 창 앞쪽에는 벽걸이 TV와 소파가 놓여 있다. 현관 근처 한쪽 벽은 CD로 가득 채워져 있고, 맞은편은 자잘한 물건이 놓인 선반이다. 침실도, 부엌도 없는 단출한 구조다.

 “자, 저희 집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우선 음료수라도 한 잔 하실까요.” 그가 인사를 건넨다. 하지만 방에는 냉장고도, 싱크대도 없는데 어떻게? 그가 TV위에 달린 기다란 핸들을 잡아 당기니 TV가 걸린 벽이 앞으로 스르르 움직이기 시작한다. 감춰져 있던 뒤쪽 벽면에서 싱크와 2개의 전기버너를 갖춘 주방이 나타난다. TV가 매달려 있는 약 30㎝ 두께의 벽 뒤편에는 냉장고와 찬장, 술병이 진열된 미니바가 있다. 그가 능숙한 손놀림으로 벽에서 잔을 꺼내 와인을 따라 건네준다.

 지난 25년간 그는 무려 4번이나 집을 리노베이션했다. 자신의 집을 건축적 아이디어를 실험하는 공간으로 활용한 것이다. 2008년 완성된 이번 집에는 ‘도메스틱 트랜스포머(Domestic Transformer)’라는 별명이 붙었다. ‘무빙 월(Moving Wall·움직이는 벽)’과 접이식 가구를 이용한 변신 로봇 같은 집. 방 안의 움직이는 벽 3개를 이동시키면 감춰져 있던 부엌과 서재, 드레스룸, 욕실 등이 튀어나오고, 벽을 어떻게 움직이는가에 따라 총 24개의 서로 다른 공간이 탄생한다.

 특히 창 앞에 블라인드를 내려 스크린으로 활용하거나, 파티 때 DJ박스로 쓸 수 있도록 샤워부스에 화려한 조명을 다는 등 ‘어른들을 위한 놀이터’로서의 기능에도 집중했다.

개리 창이 자신의 아파트 벽에 붙어 있는 침대를 내리고 있다. [사진작가 양우성]

 “서민들이 주로 사는 이 동네에는 폭이 50㎝밖에 안 되는 소규모 상점이 많아요. 그런 가게들은 좌판을 펼치고 테이블을 가게 앞으로 내놓아 쓸 수 있는 공간을 확장하죠. 그런 모습에서 아이디어를 얻었습니다.”

 퍼즐놀이를 하듯 새로운 공간을 창조해내는 개리 창의 재능은 2002년 ‘수트케이스 하우스(Suitcase House)’로 널리 알려졌다. 중국 베이징의 만리장성 인근 고급 호텔 단지의 한 동을 차지하고 있는 ‘수트케이스 하우스’는 겉으로 보기엔 축대에 올려놓은 긴 박스처럼 보인다. 안은 텅 비어 있고 무용 연습실처럼 마루가 깔려 있다. 하지만 이 마루의 부분부분을 들어올리면 마루가 벽처럼 세워지고, 그 아래 0.5층의 공간에 담겨 있는 침실과 서재, 부엌 등이 나타나는 신기한 집이다.

 현재 홍콩인구는 약 710만 명. 중국 이민자 등으로 최근 10여 년 새 50만 명이 늘어났다. 개리 창의 작업은 늘어나는 인구과 좁은 공간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는 홍콩의 주택시장에 아이디어 뱅크 역할을 하고 있다.

 “좁은 공간에 살면 사람들이 갇혀 있다는 느낌을 갖기 쉽고, 삶의 만족도가 낮아집니다. 작은 집에서 보다 풍요롭게 살아가는 방법을 지속적으로 고민해야 할 필요가 있죠.”

 홍콩만의 이야기일까. 취재에 동행한 건축가 신혜원씨는 “한국에도 1인 가구가 점점 늘어나고, 도시의 주거문제가 심각해지고 있다. 미래형 최소주택을 보여주는 개리 창의 실험에서 우리도 참고해야 할 부분이 많다”고 말했다.

◆ 개리 창=1962년생. 홍콩대 건축학과 졸업. 94년부터 건축·디자인 회사 ‘엣지 디자인 인스티튜트(EDGE Design Institute)’를 이끌고 있다. 홍콩의 브로드웨이 시네마테크, 메가 아이어드벤처 데이터 센터 등을 설계했다. ‘수트케이트 하우스’로 2003년 런던 ar+d 어워드, ‘도메스틱 트랜스포머’로 2009년 ‘디자인 포 아시아’상을 수상했다. 2000·2002년 베니스비엔날레 건축전에 참가했다.

▶[관련기사] 공간의 재발견 ‘2012 홍콩 건축 답사기’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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