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어버이날이 공휴일 된다고 공경심 생기나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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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6호 02면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가 9일 “어버이날을 공휴일로 지정하겠다”고 공약해 논란이 일고 있다. 어버이날 휴일 지정과 웃어른 공경심이 얼마나 상관관계가 있는지 의심스러워서다. 한글날에 이어 어버어날도 인심 쓰듯 공휴일로 만든다면 국군의 날, 개천절도 공휴일 요건을 갖추었다. 요즘 우리 사회는 지하철·버스 자리 양보 다툼부터 시작해 노인 폭행, 현대판 고려장까지 과거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 빈발하고 있다.

사실 ‘착한 자식’들은 공휴일이 아니라도 어버이를 받들고 모신다. 공휴일이 아닌 지금도 어버이날을 전후해 감사의 말과 함께 카네이션을 달아 드리고 식사 대접을 하는 게 오랜 관습이다. 문제는 이도 저도 아닌 부류다. 어버이날이 공휴일이 된들 상당수 젊은이는 푹 쉬거나 나들이에 바쁠 것이다. 어버이 공경의 전통은 공휴일 논란과 관계없이 가정·학교·정부가 힘을 합쳐 꾸준히 다듬어 나갈 사안이다.

공휴일 논란은 22년 만에 다시 공휴일로 부활된 한글날을 상기시킨다. 행정안전부는 지난 4월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의 83.6%가 공휴일 지정에 찬성했다며 이를 추진했고 여야 정치권도 선뜻 추인했다. 그러나 인터넷에 흘러다니는 속내는 ‘한글 사랑’보다는 ‘놀아서 좋다’는 쪽이다. 벌써 2017년에는 최대 10일간 황금연휴가 생겼다고 떠들썩하다. 인터넷을 장식하는 국적 불명의 외계어, 공중파의 부적절한 대화, 정치권의 막말 등으로 인한 한글 파괴의 해결책은 뒷전에 놓인 느낌이다.

여야 정치권의 ‘공휴일 지정’ 약속은 신중해야 한다. 여론조사에서 찬성이 많다는 근거만 댈 일도 아니다. 쉬는 날이 더 많아진다는데 상식적으로 반대가 많겠는가, 아니면 찬성이 많겠는가. 그래서 공휴일 지정을 대선 유세 기간에 선심 쓰듯 툭툭 던져선 곤란하다. 60대 이상 세대의 지지세가 취약한 문 후보와 민주당이 혹여 노인 표를 겨냥해 이런 공약을 하지 않았기를 바랄 뿐이다.

물론 다른 나라와 비교할 때 한국의 법정 공휴일이 많은 것은 아니다. 현행 법정 공휴일은 12일인데 주말과 겹치는 날을 제외하면 8일 안팎이다. 전 세계에서 공휴일이 가장 많다는 아르헨티나의 경우 19일이나 된다. 그래서 미국처럼 법정 공휴일을 아예 날짜가 아니라 특정 요일로 지정하자는 의견도 나오고, 중국의 노동절이나 국경절처럼 긴 연휴를 갈 수 있게 하자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이는 기념일의 의미를 퇴색시킬 수 있다. 게다가 다른 기념일과의 형평성 문제도 있다. 국군의 날은 1991년 한글날과 함께 공휴일 지정에서 빠졌지만 그 의미로 보면 공휴일로 부활시키지 못할 이유가 없다. 제헌절은 또 어떤가. 어느 국가의 공휴일에는 역사와 문화와 전통의 메시지가 담겨 있다. 그래서 좀 더 신중한 자세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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