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혹적인 정글뮤직의 음모 '쥐의 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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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자기만의 독특한 코드를 가지고 있다. 촉수를 세워 그것을 포착한다면, 숨막히도록 섬뜩하고 생생한 광기를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서둘러 긴장할 필요는 없다.

여러 개의 코드가 그물처럼 얽혀 있다 하더라도 본체를 향한 통로는 있게 마련이니까. 여기, 이 소설을 좀더 실감나게 즐길 수 있는 세 가지 기본코드가 있다. 이는 이 소설이 탄생하게 된 근원이기도 하며 스토리를 이끌어가는 배경음악이기도 하다.

그러니 이것들만 제대로 쥐고 있으면 아무리 거대한 광란의 회오리가 머릿속을 휘저어도, 이 책을 통째로 삼켜 맛나게 되새김질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코드 A : 쥐의 아들
주인공 사울에게는 탄생의 비밀이 있다. 바로 그의 아버지가 쥐라는 것. 왜 하필, 치명적인 병균을 옮기는 더럽고 냄새나는 쥐가 스토리 중심에 놓여 있을까? 쥐는 인간의 손길이 미처 닿지 않는 곳, 어둡고 축축한 곳에 모여사는 동물이다.

즉 쥐를 통해 인간사회의 음지(陰地), 혹은 도시의 화려함 뒤에 감추어진 추악한 이면을 드러내고자 한 것이다. 이는, 사울이 점차 자기에게 숨어 있던 쥐의 본능을 알아차리는 과정과 맞물린다.

전에는 밝게 생동하는 것처럼 보였던 도시가, 이제는 단지 냉혹함과 쓰레기 냄새만으로 이루어진 무감각한 공간으로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도시의 이면, 어쩌면 도시의 본질일 수도 있는 비밀스러운 치부를 보게 된 사울은 그 혼란에서 채 벗어나기도 전에 새로운 음모에 휩싸이게 된다.

코드 B : 피리 부는 사나이
“쥐가 엄청나게 들끓던 한 마을에서 쥐 잡이를 고용했다. 그는 피리의 선율로 쥐들에게 최면을 걸어 모두 강에 빠뜨려 죽인 후 대가를 요구했지만, 욕심이 생긴 마을 사람들은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이에 몹시 화가 난 쥐 잡이는 아이들을 피리소리로 홀려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데리고 가버렸다.”

작가는 독일 전설인 이 이야기를 작품의 기본 골조로 삼았다. 그가 보는 ‘피리 부는 사나이’는 비인간적인 본성과 자본주의의 무차별적인 지배욕을 상징한다.

실제 이 소설에 등장하는 ‘피리 부는 사나이’는 그때(전설)의 배신감을 안은 채 런던 거리에 나타나 세계를 전복시킬 음모를 꾸민다. 거기에는 한치의 관용이나 이해도 존재하지 않으며, 오로지 맹렬한 공격성만이 남아 있다.

코드 C : 드럼과 베이스
피리 부는 사나이는 모든 존재를 지배할 수 있는 완전한 선율을 만들기 위해 런던의 힙합 언더그라운더들과 접촉을 시도한다. 여기서 ‘완전한 선율’이란 단지 곱고 맑은 소리가 아니다. 강렬한 드럼과 음울하게 울부짖는 베이스가 심장을 관통하는 움직임이 되어 사람의 넋을 빼앗는 정글음악이 바로 그것이다.

그렇게 완성된 소리는, 누구라도 마약에 취한 듯한 환각상태에 빠지게 한다. 그것을 제어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는 사울이다. 하지만 피리 부는 사나이는 사울을 제거하기 위해 쥐의 본성과 인간의 본성을 동시에 조종할 수 있는 선율을 만들어낸다. 두 사람의 대립이 극에 치달은 것이다. 대립의 끝은 무엇이냐고? 아쉽지만 이쯤에서 슬쩍 말꼬리를 자르겠다.

이 세 가지의 코드는 단지 이 소설의 본체와 만나기 위한 열쇠일 뿐이다. 이것이 이야기의 전부라고 생각한다면 작가를 너무 과소평가하는 것이다. 구석구석 박혀 있는 작은 이야기들은 치밀한 상상력의 극치를 이루며, 냄새와 소리에 대한 세밀한 묘사는 후각과 청각을 마비시킬 정도다. 또한 비현실의 극대화로 현실의 알몸을 적나라하게 까발리는 것, 이것이 진정한 판타지 소설의 매력이 아닐까 싶다.
(황여정/리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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