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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CEO] 미국 보잉 필 콘딧 회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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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5면

'바람의 도시'라 불리는 미국 시카고. 겨울철 미시간 호수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아주 매섭다. 상용.군용기와 우주 발사체를 생산하는 세계 최대의 항공우주업체인 보잉은 2001년 9월 본사를 시카고로 옮겼다.

보잉 7시리즈로 유명한 상용기 생산라인이 있는 미국 서부 시애틀에서 옮겨온 것이다. 지난해 12월 19일, 한국에선 16대 대통령 선거를 치른 날. 보잉 본사에서 필 콘딧(62)회장을 만났다.

세계 1백45개국 고객을 상대로 사업을 하는 보잉의 최고경영자(CEO) 필 콘딧 회장은 국내외 출장으로 항상 바쁘다고 회사 관계자가 전했다. 본사 빌딩 36층에 있는 그의 집무실은 의외로 소박했다.

다섯평쯤 될까. 그의 어머니가 세계 오지를 여행하며 찍었다는 천진난만한 각국 어린이의 사진 10여점이 벽에 걸려 있었다. 오히려 비서실과 손님 대기실이 더 넓었다. 방이 좁지 않으냐는 질문에 그는 "일하는 데 아무 지장이 없다"고 했다.

시카고 드폴대 김성태 교수(신문방송학)가 통역을 맡았다. 언론을 담당하는 주디스 A 멀버그 부사장이 배석했다. 그녀는 콘딧 회장을 '필'이라고 부르며 이웃집 아저씨처럼 편하게 대했다. 한시간으로 예정됐던 인터뷰는 30분을 더 넘겼다. 질문은 자연스럽게 한국의 대통령 선거 결과와 한국 사업 전망으로부터 시작됐다.

-앞으로 5년 동안 한국을 끌어갈 새 대통령이 뽑혔다. 한국 사업에 대한 전망은.

"한국의 대선 결과에 대한 소식을 들었다(시차 때문에 대선 결과가 나옴). 새 대통령이 많은 어려움을 극복한 훌륭한 분이라는 얘기도 접했다. 가까운 시일 안에 노무현 당선자와 만나 상호 관심사에 대해 깊이있는 토론을 하고 싶다. 새 정부 출범 후에도 보잉사는 한국 정부와의 우호적인 관계를 계속 유지하기를 희망한다. 盧당선자가 미국을 방문한다면 만나서 관계 증진 방안을 논의하고 싶다."

-윌리엄 오벌린 보잉코리아 사장이 주한미상의(암참) 회장에 취임했는데.

"보잉이 한국에서 비즈니스뿐 아니라 한국의 문화와 국민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희망한다. 문화와 정서를 모르고는 글로벌 기업이 제대로 활동을 할 수 없다고 본다."

-지난해 6월 월드컵 때 받은 한국인에 대한 인상은.

"지난해 6월 월드컵 경기를 보기 위해 1박2일 동안 짧게 한국을 방문했다. 그 때 한국민의 친절함과 월드컵을 통해 전국민이 하나되는 모습을 보고 큰 감명을 받았다."

-2016년에는 보잉 창립 1백주년이 된다. 보잉의 비전은 무엇인가.

"비전은 한마디로 장기적인 기업 전략이다. 그래서 보잉의 1백주년을 준비하며 1996년에 이를 위한 20년 비전, 즉 발전 전략을 세웠다. 당시 맥도널 더글러스와의 합병으로 우리에게는 또 한번 기업의 발전을 위한 새로운 비전 제시가 필요했었다. 그래서 96년에 '비전 2016'을 세우면서 중점을 뒀던 점은 보잉을 보다 글로벌화하는 것이었다. 세계의 고객들을 상대로 좀더 좋은 제품, 더 완벽한 시스템을 제공하는 것이다. 고객들의 욕구에 맞춘 우수한 제품을 '좋은' 가격에 공급하는 것이다."

-비전과 철학은 어떻게 세우나.

"나는 보잉의 CEO로서 비전을 제시할 때, 20년을 내다보는 장기적인 전략수립과 함께 5년 정도의 단기 계획도 세운다. 이는 너무나도 빠른 환경 변화에 재빨리 대처하기 위한 방법이다. 기업의 비전이나 전략이라는 것은 쉽게 바뀌어도 안되겠지만 주위의 변화에 대해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못하면 또한 안되는 것이다. 나는 어떤 비전을 제시할 때 먼저 앞으로 세계는 어떻게 변할 것인가, 우리의 경쟁자는 어떨 것인가, 기술은 어떻게 발전할 것인가, 그리고 우리의 고객들은 어떤 것을 원할 것인가 등의 다양한 요소들을 생각한다. 그러면서 기업이 나아갈 '큰 그림 (big picture)'을 그리면서 환경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단기적인 기업 전술이나 계획도 세운다."

-보잉의 경쟁력은 어디서 나오나.

"보잉의 발전사를 보면 50년대에는 업계 3위에 불과했다. 하지만 업계에서 처음으로 제트 모형의 비행기를 시도하면서 경쟁력을 키워왔다. 우리는 어떤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변화를 추구하는 것이다. 새로운 변화에 대한 지식과 이를 위한 기업의 능력을 최대화시키는 노력의 연속이 보잉의 발전을 가져왔다고 생각한다."

-본사를 시카고로 옮긴 이유는.

"본사 이전은 매우 성공적이라고 본다. 기업의 새로운 발전을 위해 이전한 시카고 본사에서는 오직 기업의 발전 전략에만 모든 힘을 쏟고 있다. 과거 시애틀 본사 시절에는 기업 운영에 관련돤 사항부터 매일 매일의 조그마한 업무까지 신경썼다고 볼 수 있다. 새로운 기업 전략을 수립하고 기업이 나아갈 방향에 대한 노력의 일환으로 본사를 옮긴 것은 매우 잘한 일이다."

-보잉의 재교육 프로그램은.

"보잉은 인적 자원에 대한 투자를 경영 원칙으로 삼고 있다. 그래서 우리가 가진 인력이나 기술을 보다 잘 활용하면서 그들에 대한 재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환경 변화에 잘 대처할 수 있도록 교육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세인트루이스에 있는 보잉의 리더십센터에서는 4단계의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매년 2주 정도의 교육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여기에서 기업의 발전을 위한 그들의 역할을 교육하고 또 변하는 환경을 잘 이해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나 자신도 이 과정에 참가하고 있다."

-아시아와 한국 시장에 대한 평가와 전략은.

"보잉은 상업적.군수적인 차원에서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여러 국가와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해 왔다. 한국이나 아시아는 보잉에 매우 중요한 파트너다. 단기적인 기업의 이익만을 위한 차원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상호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했으면 한다. 이를 위해 보잉도 항상 최선을 다할 것이다."

시카고(미국)=김동섭 기자

*** 필 콘딧 회장은

활날개 특허 보유…日서 공학박사 취득

필 콘딧은 보잉사의 회장이자 CEO다. 그는 버클리대(기계 공학)와 프린스턴대(항공공학 석사)를 졸업하고 1965년 초음속 여객기 (SST) 프로그램의 항공역학 엔지니어로 보잉에 입사했다. 71년에는 747기 성능 개선 담당 선임 엔지니어로 발탁됐다. 74년부터 일년 동안 미 MIT에서 특별연구원으로 일했다.

보잉의 세븐시리즈(707~777) 상용기를 담당하는 주요 부서장을 맡은 뒤 84년 보잉 상용기 그룹의 판매 및 마케팅 담당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92년에 사장이자 이사회의 이사로 선임됐고 97년에 보잉 82년 역사상 일곱번째 회장으로 선출됐다.

그는 상용 항공기 기술에 대한 여러 논문을 출간했고, '활날개(Sailwing)'라 명명된 유연한 날개에 대한 세계 특허를 갖고 있다.

또 광폭형 보잉 777 항공기를 만든 팀의 리더였으며, 이 팀은 항공업계에선 유명한 콜리어상 등 많은 항공학 관련 상을 받았다. 그는 MIT에서 경영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고, 97년에는 도쿄 과학대학에서 서양인으로는 처음으로 공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필 콘딧 회장은 미국 캘리포니아 버클리에서 출생했다. 18세 때 비행기 조종사 자격증을 취득할 정도로 '비행광'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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