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반도체 시장전망 갈팡질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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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화일로로 치닫고 있는 반도체 경기의 바닥은 언제인가. '아무도 모른다' 가 정답으로 채택될 것 같다. 세계적인 시장조사기관들이 명예에 먹칠을 해가며 전망치를 연거푸 수정하는가 하면 같은 시점에 발표된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의 전망도 제각각이다.

한국의 수출이나 증시에서 차지하는 반도체의 비중이 워낙 큰 만큼 이같은 분석을 접하는 국내 업체나 투자가들도 혼란에 빠졌다.

◇ 엇갈리는 전망=세계적인 시장조사기관인 미국 데이터퀘스트는 지난해 10월 올 세계 반도체 매출 규모가 27.5%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그러나 이 전망은 완전히 빗나갔다. 지난해 9월 말부터 반도체 가격이 급락하자 데이터퀘스트는 지난 5월 '17% 감소' 로 전망치를 고쳤다. 9일에는 이를 다시 수정해 올 반도체 매출이 25.8% 줄어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상황이 바뀔 경우 전망치를 수정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같은 시점에 발표된 주요 증권사들의 분석은 그야말로 종잡을 수 없다.

메릴린치는 지난 1일 "공급이 줄어 조만간 D램 가격이 바닥을 치고 회복할 것" 이라고 내다봤다. 8일에도 "D램 가격은 앞으로 더 하락할 수 있지만 대체로 안정세에 들어선 것으로 보인다" 고 밝혔다.

국내 대우증권도 9일 "8, 9월이 D램 경기의 바닥" 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크레디트스위스 퍼스트보스턴(CSFB)증권과 UBS워버그 증권은 "D램 경기가 침체 국면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며 정반대의 의견을 내놓았다.

◇ 왜 제각각인가=분석기관마다 세계 경기동향에 대한 전망이 서로 다르다는 게 가장 중요한 이유다. 미국발 경제불황의 파급효과에 대한 전망, 세계 PC판매 회복시기 등에 대해 서로 다른 잣대를 대고 있기 때문.

하이닉스 반도체 관계자는 "분석기관들이 고유의 틀에 맞게 데이터를 가감하는 것도 원인" 이라고 말했다.

최근 국내 하이닉스 반도체를 비롯해 일본 도시바 등의 잇따른 반도체 감산을 보는 시각도 저마다 틀리다.

이들 업체의 감산이 반도체 가격 반등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시각이 있는가 하면 삼성전자.마이크론 등 메이저 업체들이 감산에 공조하지 않는 이상 반도체 수급균형은 불가능하다는 지적도 있다.

◇ 반도체 업체들도 헷갈려=삼성전자 윤종용 부회장은 최근 외국 언론기관의 인터뷰를 통해 "올 연말께 가격이 회복될 것" 이라고 내다봤다.

인텔 크레이그 베럿 회장도 "올들어 위축된 PC경기가 연말께 회복될 것" 이라고 밝혔다. PC경기가 회복된다면 국내 업계의 주력제품인 메모리 시장이 살아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업체들의 전망과는 달리 시장조사기관들은 대부분 내년 중반 이후에도 반도체 가격이 바닥권일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데이터퀘스트는 내년 하반기 수급균형이 이뤄진 뒤 2003년께 지난해 수준으로 회복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이처럼 분석이 엇갈리자 정작 생산.투자계획을 짜는 업계 실무자들은 "향후 생산전략을 짜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고 털어놨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내부적으로도 시장전망에 대한 분석을 계속하고 있지만 내년을 비롯한 향후 투자계획을 수립하는 데 어려움이 많다" 고 말했다.

김준현.홍수현 기자 takeita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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