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lobal Eye] '제2의 카터'가 나서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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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핵 개발을 둘러싼 북.미 간 대치국면이 석달로 접어들었다. 대화를 통한 사태의 평화적 해결이 국제여론의 주류이고 미국 역시 '외교를 통한 평화적 해결'입장을 줄곧 견지하고있다.

그러나 외교적 압박에 갈수록 무게가 실릴 뿐 정작 북.미 간 대화의 기미는 좀체 보이지 않고 있다.

사태를 평화롭게 풀려면 1994년 10월 미.북한 간 제네바합의가 깨어진 원인부터 냉정히 짚어볼 필요가 있다. 핵 확산 방지를 위한 미국의 기본정책은 '죄와 벌'접근방식이다. 위반에 대해 가차 없는 응징이 공식이다.

제네바합의는 '외교적 기브 앤드 테이크'방식으로 그 드문 예외에 속한다. '합의된 틀(Agreed Framework)'이란 생소한 명칭이 말하듯 제네바합의는 완결된 협정이 아니고 서로 주고 받으면서 핵확산 방지를 실현해가는 약속의 틀이었다.

90년대 초 이미 북한은 적어도 두 개의 핵폭탄을 만들 수 있는 플루토늄을 확보한 것으로 미국은 추정하고 있었다. 제네바합의는 이 '기존의 핵'을 사실상 불문에 붙이고 더욱 강한 핵능력 보유를 막을 목적에서 원자로 건설중단을 대가로 중유 지원과 경수로 2기 건설을 약속한 것이다.

그러나 합의문 서명 다음주 실시된 미국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이 의회를 장악하고 보수매파들이 '실패작'이라고 클린턴 행정부를 몰아세우며 합의사항 이행에 발목을 잡기 시작했다. 경수로 건설 공기는 최소한 3년 이상 늦어졌고 중유의 선적도 번번이 늦춰졌다.

양국 관계정상화 역시 8년이 지나도록 큰 진전이 없는 가운데 북한은 우라늄 농축을 통한 핵개발을 은밀히 추진해온 것으로 드러난 것이다.

이 상호 불신에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두 가지 '실수'가 불을 붙였다.

부시는 2001년 3월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면전에서 햇볕정책에 강한 거부감을 드러냈고, 이듬해 1월 의회연설에서 북한을 '악의 축'국가로 지목하며 핵 선제공격의 대상이 될 수도 있음을 시사했다. 게다가 김정일(金正日)에 대한 인신공격과 인민을 굶기는 북한체제에 대한 부시의 질타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누가 먼저 약속을 깨뜨렸느냐는 각기 입장에 따라 논란의 여지가 있다. 중요한 것은 합의의 틀을 엮어나갈만한 상호신뢰가 서로 간에 없었다는 점이다.

지금에 와서 북한이 그들 체제의 보장과 불가침조약부터 한사코 앞세우는 것도, 미국이 '선(先) 폐기, 후(後) 대화'를 고집하는 것도 서로를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94년 핵 위기 때 전직 대통령 지미 카터는 '고집대결이 낳을 수 있는 엄청난 과오를 막기 위해'평양행을 자청했고,북한에 빠져나갈 길을 열어주면서까지 파국만은 모면시켰다. 앞문을 닫고 있을 때 뒷문을 열어두는 것은 외교의 기본이다.

북.미 간 대치와 남북한간 협력이 복잡하게 꼬여들고, 더구나 북한 핵에 바로 한국이 인질로 잡혀 있는 상황에서 예방적 선제공격 또한 현실적 한계가 있다.

북.미 간 신뢰를 바탕으로 핵확산방지(NPT)체제의 틀 속에서 문제를 풀 수밖에 없다.

이를 위해 카터 같은 중재자가 다시 나서 서로 체면을 세워주며 포괄협상으로 이끌고, 북한의 '기존 핵'을 포함한 제네바합의의 완결을 통해 한반도의 비핵화를 실현시키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한국은 북한 핵의 최대 당사자 입장에서 미국 및 북한과는 물론 주변국들과의 총력외교로 분위기 조성을 주도해야 한다.
변상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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