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간섭과 내부 병폐에 맞선 과학계 ‘잔 다르크’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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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5호 03면

프랑스과학원의 ‘종신 사무총장(Secretaire perpetuel)’은 프랑스 기초과학을 총지휘한다. 원장이 있으나 실무 책임자는 종신 사무총장이다. 원래는 글자 그대로 종신직(終身職)이었으나 지금은 임기가 75세로 제한된다.

브레시냑 사무총장은 

현재 종신 사무총장인 카트린 브레시냑은 과학자 집안에서 태어났다. 어머니는 생리학자, 아버지는 물리학자였다. 아버지 장 테이약은 퀴리 부인(1867~1934)의 딸인 이렌 졸리오퀴리(1897~1956)의 제자였다. 걸음마보다 과학을 먼저 배우는 환경이었지만 문학에도 매혹됐다. 과학자가 된 것은 “어쩌면 게을렀기에 손쉬운 선택”을 한 결과였다. 그는 지금도 시(詩)나 건축 분야에 조예가 깊다.

파리에서 출생해 퐁트네오로즈의 고등사범학교를 졸업하고 파리 11대학에서 물리학 국가박사를 받았다. 그는 “여성은 한꺼번에 여러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자식 셋을 낳아 키우고 150편 이상의 논문을 단독 저자 혹은 공저자로 발표했다. 그는 물리학의 클러스터(clusters) 분야를 개척한 선구자다.

별명은 ‘과학계의 잔 다르크’다. 국립과학연구원(CNRS) 원장(2006~2010)으로서 정부의 간섭으로부터 과학의 독립성을 수호하고, 내부 관료주의 병폐를 개혁해야 하는 ‘두 개의 전쟁’을 치렀다. CNRS는 유럽 최대 과학 기관이다. 연구자 1만2000명을 포함해 2만6000명의 직원이 일하고 있다.
그는 결단력과 함께 복잡한 문제를 명료하게 정리하는 분석력이 뛰어나다. 높은 자리에 있으나 권위주의와는 거리가 먼 소탈한 성격이다. “조직원의 협력 없이는 구조적인 개혁을 수행할 수 없다”는 판단에서 그는 아랫사람들의 아이디어를 중시한다.

과학 세계화 시대에 적합한 인물인 그는 2006년 ‘과학계의 유엔’이라고 할 수 있는 국제과학협의회(ICSU·1931년 창설) 의장으로 선출돼 2011년까지 일했다.
진보주의자인 그는 2005년 중도 우파 정당인 대중운동연합(UMP)의 과학 정책 개발에 참여하기도 했다.

2006년 르몽드와 인터뷰에서 브레시냑은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말을 인용했다. “정열 속에 스스로를 잃어버리는 자는, 정열을 잃은 자보다 잃는 게 적다.” 브레시냑의 과학 정열을 인정한 정부는 그에게 프랑스 최고 훈장인 레지옹 도뇌르를 수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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