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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가 지배하는 미디어 이벤트 몸짓·표정 연출, 좌석도 맞춤 세팅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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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5호 14면

미 정치에서 대선 토론은 말의 논리와 몸의 감성이 빚어내는 이벤트로 발전해 왔다. 미국대통령토론위원회(CPD)가 대선 토론의 효시로 꼽는 건 1858년 에이브러햄 링컨 대 스티븐 더글러스의 상원의원 선거 토론이다. 7개 도시를 도는 순회 토론회였다. 이때만 해도 말의 논리가 몸의 감성보다 훨씬 중요했다. 감성과 이미지가 중요해진 건 1960년 대선 토론이 TV로 중계되기 시작하면서다. 토론 전문가인 이상철(학부대학) 성균관대 교수는 “TV토론은 이제 하나의 미디어 이벤트가 됐다. 언어로 전달하는 메시지만큼 몸짓·표정이나 스튜디오 자리 배치 같은 비언어적 요소가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김준석(정치외교학) 동국대 교수는 “TV토론은 일종의 프레젠테이션”이라며 “말을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잘하는 것처럼 보이는 전달력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대선 풍향계’ TV토론 성공 포인트

베테랑 정치인 닉슨도 무릎 꿇게 한 ‘이미지’
60년 9월 26일 미 역사상 첫 대선 TV토론이 있던 날, 7000만 명의 시청자가 공화당 후보 리처드 닉슨 부통령과 민주당 후보 존 F 케네디 상원의원의 대결을 지켜봤다. 닉슨은 베테랑 정치인으로 토론에 일가견이 있었지만 하필 이날 컨디션이 바닥이었다. 한 달 전 유세 현장에서 자동차 문에 무릎을 세게 찧고 열흘 넘게 병원 신세를 진 데다 식중독 증상까지 있었다. 유세 강행군으로 몸무게는 9㎏이나 빠져 옷이 너무 커 보일 정도였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방송 시작 15분 전 시카고 CBS 방송국에 도착해 차에서 내리면서 다친 무릎을 또다시 차 문에 부딪혔다. 이래저래 운수 나쁜 날이었다.

1992년 미 대선에선 유권자가 직접 패널로 나선 타운홀미팅 방식의 토론이 새롭게 등장했다. 클린턴(오른쪽)은 특유의 친화력으로 상대 후보를 압도했다. [중앙포토]

그러나 가장 큰 악재는 닉슨 본인이 자초했다. 리허설을 거부한 채 방에 틀어박혀 토론 자료만 읽는 데 신경을 썼다. 이미지의 중요성을 간과했기 때문이다. 발단은 수염이었다. 닉슨은 아침에 면도를 해도 저녁 무렵 거무스름하게 수염이 돋는 일명 ‘오후 5시의 그림자’ 때문에 나이가 들어 보였다. 본인도 이를 모르지 않았다. TV토론을 2주 앞둔 인터뷰에서 “지지자들은 내게 수염 좀 어떻게 해보라고들 하지만 TV토론 30초 전에 면도를 해도 화면엔 내가 턱수염을 기른 것처럼 보일 텐데 어떻게 하겠어요”라고 농담했다. TV 토론 직전, 보다 못한 참모진이 화장품 가게에서 수염을 가려주는 남성용 크림 ‘레이지 셰이브(Lazy Shave)’를 구해 왔다. 그러나 스튜디오 조명 온도를 계산하지 못해 얼굴에 땀이 흐르면서 화장품이 녹아내렸다. 닉슨은 손수건을 꺼내 연신 얼굴을 훔쳐야 했다. 여기에다 양복 상의 첫 단추는 허술하게 풀려 단정치 못한 인상을 줬다. 옅은 회색 양복은 창백한 얼굴을 부각시켰다. 오죽하면 토론 직후 닉슨의 어머니가 “어디 아픈 것 아니냐”는 걱정 섞인 전화까지 걸 정도였다.

반면 케네디 후보는 토론을 앞두고 호텔 옥상에서 참모들과 리허설을 반복했다. 옥상에서 얼굴이 햇빛에 그을려 건강미 효과까지 덤으로 얻었다. 흑백 방송임을 고려해 흰색 대신 푸른색 와이셔츠를 고른 것도 부드러운 인상을 줬다. 닉슨과 케네디는 47세, 43세로 네 살 차이였지만 닉슨이 아버지뻘처럼 보인다는 평가를 받았다. 라디오를 통해 토론을 들은 유권자들은 닉슨의 손을 들어줬지만 결국 그해 대선은 케네디의 승리로 돌아갔다. 득표율 49.9% 대 49.6%의 초박빙이었다. TV 토론이 악몽 같았던 닉슨은 68년, 72년 대선 당시 TV토론을 거부했다.

지난달 22일 마지막 3차 토론에서 설전을 벌이는 오바마(오른쪽)와 롬니. [AP]

TV토론이 부활한 76년 대선 이후 각 후보들은 이미지에 승부를 걸었다. 키 1m77㎝였던 지미 카터 민주당 후보는 1m83㎝의 제럴드 포드 대통령을 의식해 자신의 연단을 더 높여달라고 주문했다. 84년 부통령 후보 토론 땐 조지 H W 부시 공화당 후보보다 15㎝가 작았던 제럴딘 페라로 민주당 후보를 위해 아예 무대의 경사를 달리했다. 이런 고육지책에도 불구하고 88년 TV토론에서 맞붙은 마이클 듀커키스 민주당 후보는 땅을 치는 후회를 했다. 토론 후 부시 후보와 악수하면서 15㎝의 키 차이가 카메라 앞에 확연히 드러난 것이다.

TV토론은 능력보다 전략
84년 10월 7일, 재선을 앞둔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TV토론에서 의외로 고전했다. 영화배우 출신이어서 카메라를 편안히 요리할 줄 알았던 레이건은 ‘위대한 소통가’라는 별명까지 자랑했다. 그런 레이건이 말을 더듬고 당황하는 모습을 보이자 당시 73세였던 레이건의 나이가 선거 이슈로 떠올랐다. 1차 토론만 놓고 보면 레이건보다 17세 아래였던 월터 먼데일 민주당 후보의 압승이었다. 문제는 TV토론에 임하는 전략이었다. 먼데일이 공격적으로 나올 것으로 예측한 레이건의 참모진이 리허설을 거듭해 레이건의 진을 빼놓았기 때문이다. 그 뒤 ‘여유롭게 임하자’는 전략을 세운 레이건 측은 달라진 모습을 과시했다.

2차 토론의 패널리스트인 볼티모어선의 헨리 트레위트 기자가 물었다. “당신은 이미 미국 역사상 나이가 가장 많은 대통령입니다. 케네디 전 대통령이 쿠바 미사일 위기 당시 밤을 새워가며 사태를 수습해야 했던 때가 기억나는군요. 직무 수행하는 데 괜찮겠습니까?” 레이건은 싱긋 웃으며 답했다. “전혀 문제 없습니다. 저는 이 선거에서 나이를 문제 삼지 않을 것임을 알아주시길 바랍니다. 제 상대 후보가 젊지만 미숙하다는 사실을 정치적으로 부당하게 이용하지 않을 겁니다.” 유머 섞인 이 답변으로 레이건은 바로 승기를 잡았다.

92년 대선 때 빌 클린턴 후보 역시 자신의 강점을 활용한 TV토론 전략을 세웠다. 타운홀미팅 방식을 도입하자고 제안한 것이다. 유권자들을 직접 대면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공간 활용을 마음껏 할 수 있도록 게임의 룰을 바꿔 친화력을 최대한 과시하기 위해서였다. 전략은 적중했다. 클린턴은 방청석으로 걸어가 질문하는 여성의 눈을 부드러운 미소와 함께 바라봤다. 반면 재선에 도전한 조지 H W 부시 대통령은 방청객의 질문을 받고도 지루한 듯 고개를 숙여 손목시계를 봤다. 결과는 클린턴의 승리였다.
 
인간적 매력으로 승부하라
아버지 부시와 달리 아들 조지 W 부시는 인간적 매력으로 호감을 샀다. 2000년 10월 앨 고어 부통령과 맞붙은 부시는 세 차례 토론의 내용에선 고어를 능가하지 못했다는 평을 받았다. 그러나 고어가 부시의 발언 도중 한심하다는 듯 한숨을 크게 쉬고 어깨를 으쓱하는 제스처를 쓰면서 오히려 부시의 인간적 매력이 부각됐다. 2004년 민주당 존 케리 후보와 맞붙었을 때도 상황은 비슷했다. 당시 미 언론들은 “부시는 서민의 술인 럼주, 케리는 까다로운 와인과 같다”고 평가했다.

인간적 매력의 중요성은 88년 마이클 듀커키스 민주당 후보의 실패에서도 드러난다. 사형제 폐지 의견을 펼친 듀커키스는 “만약 당신의 아내가 강간당한 뒤 살해됐다면 살인자에게 사형이 선고되길 바라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그의 답변은 이랬다. “(사형이 선고되길) 바라지 않는다. 사형제도가 범죄 재발을 막는다는 증거를 아무도 발견하지 못했다. 강력범죄에 대처하는 데 좀 더 효율적 방법이 있다고 본다.” 시청자는 그의 냉정한 답변에 충격을 받았다. 듀커키스는 이후 인터뷰에서 “아내가 나보다 더 강하게 사형제에 반대한다는 걸 설명하면서 좀 더 감정을 담아 극적으로 답했어야 했다”고 후회했다. 김준석 교수는 “유권자들이 ‘저 후보는 나와 비슷한 사람’이라는 느낌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서민적 매력을 보이는 것 역시 중요한 전략”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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