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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칼럼] 승리보다 더한 반란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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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극 '태조 왕건' 에서 궁예의 최후가 작은 논란을 불렀었다.

소위 정사(正史) 에 따르면 밥을 훔치다가 백성들한테 맞아 죽는데, 극에서는 의연하게 부하의 칼을 받는 것으로 끝냈기 때문이다. 궁예로 분장한 탤런트의 연기와 인기가 하도 좋아서 그랬다는 얘기를 듣고 나자 쓴웃음이 스쳤다.

실정과 포학은 고사하고 자식과 왕후마저 때려죽이는 패륜의 독재자도 뒷날 연기자만 잘 만나면 악행이 덮어지니 말이다. 그러나 정사란 승자의 기록이므로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으려면 패자의 입장도 함께 살펴야 한다는 제작자의 말은 더할 나위 없이 옳다.

*** 승자 독식의 역사에 반감

준우승도 시상하는 축구 시합과 달리 역사란 화상은 승자 독식의 경기이며, 특히 혁명과 반혁명이 대결한 경우는 '전부 아니면 전무' 의 계산만 유효하다.

내가 『모반의 역사』(세종서적.2001) 를 제목만 보고 펴든 것은 아마도 이런 현실에 대한 반감 때문이었을지 모르겠다.

국사 교과서 한구석에서 기껏 무슨무슨 난(亂) 으로 대접받던 17개 반역의 전말이 책의 내용이나, 그 해석은 기왕의 상식에서 크게 벗어난다.

나아가 과학적.실천적 역사학 수립과, 연구 성과의 대중화를 목표로 1988년에 결성한 한국역사연구회 회원들의 분담 집필이라는 점도 특기할 만하다.

필자 대부분이 30대 후반의 강사와 연구원이라는 사실 때문인지, 아직은(!) 목에 힘주지 않는(?) 소장 학자의 재기와 패기가 책의 곳곳에서 번득인다.

왕건은 29명의 부인에게서 26명의 아들을 낳았는데, 글쎄 그게 행복이었는지 '고역' 이었는지는 본인만이 알 일이다. 이렇게 장가까지 정략적으로 들었지만 고려 왕실은 계속 흔들렸다.

인종은 외조부이자 장인인 이자겸에게 죽었고 공민왕은 측근 총신 홍륜한테 찔렸으니, 혼인도 '천명' 빙자도 왕권 유지에 별 도움이 되지 못한 셈이다.

무인 정치의 길을 연 정중부의 반란 역시 겉으로는 문관과 무관의 갈등으로 비치지만 사실은 '백성들이 군인이 되어 쿠데타에 참가한' (1백14쪽) 민심 이반이 밑바탕을 이뤘다는 것이다.

'조선이 사대주의의 노예가 되는 데 가장 큰 원인이 서경 천도 운동의 실패' (1백10쪽) 라고 보는 신채호의 묘청 재평가나, 민생 구제에 힘써 백성들이 '성인' 이라고까지 불렀다는 신돈의 개혁정치 재조명도 그들을 일개 요승(妖僧) 으로 들어온 내게는 일종의 개안이었다.

특히 삼별초가 대몽(對蒙) 항쟁의 핵심 세력인 것은 틀림없지만 '순수하게 몽고와의 굴욕적인 강화에 저항하여 봉기했다고 보는 것은 당시의 정황에 비추어보면 설득력이 적다' (1백42쪽) 는 설명에 이르면, 행여 애국 지사들의 노호와 반격이 뒤따르지 않을까 두려울 뿐이다.

이성계는 두명의 부인에 8명의 아들을 두었으나, 생전에 벌써 부자간.자식간 골육상쟁의 화를 당했다.

공신을 누르고 왕실을 강화하려던 수양대군의 왕위 찬탈 북새통에 이징옥 같은 장수를 반란으로 몰아넣었으며, 세조의 성급한 중앙 집권 정책이 이시애의 반란을 부추기기도 했다.

인조 반정의 공신 이괄의 모반 역시 '정권 유지를 목표로 한 기찰(譏察) 실시와 고변(告變) 장려가 낳은 파생물이었다' (2백62쪽) .

왕권이 안정을 찾으면서 주먹 대신 말이 무기로 나서는 붕당 싸움이 벌어진다.

나는 정여립이 "천하는 공물(公物) 이니 어찌 정한 주인이 있으리요" (2백28쪽) 라고 외치면서 주자학의 군신강상론(君臣綱常論) 에 반기를 들었다는 사실에 놀랐고, 뒤따른 기축옥사에 당대 가장 혁신적이었던 남명학파와 화담학파의 학자들이 대거 희생됐다는 지적에는 뒤늦게 울화가 치밀었다.

허균의 『홍길동전』에서 서얼 철폐 주장은 벌써 읽었으나, 거기에 시키는 대로 따르는 항민(恒民) 과 압제에 불평만 일삼는 원민(怨民) 을 넘어 개혁 의지를 실천으로 옮기는 호민(豪民) 의 기개가 서려 있다는 얘기는 이번에 처음 들었다.

홍경래가 최후로 버틴 정주성이 관군에 떨어지면서 2천9백83명이 사로잡혔는데, 그중 "10세 이하의 남아 224명과 여자 842명을 제외한 1917명이 모두 처형된" (3백2쪽) 승자의 야만이 불과 1백89년 전 우리 역사의 한 모습이었다.

이시애의 난으로 함경도는 반역의 땅이 되었고, 정여립 이후에 전라도와 황해도 역시 모반의 땅으로 낙인 찍혔으며, 홍경래는 차별의 땅 평안도에서 차별 철폐의 봉화를 올렸다.

결국 지역을 겨냥한 집권자의 앙심과 차별이 무서운 저주를 낳고, 그 보복은 무고한 백성이 받는다는 '공식' 은 예나 지금이나 한 점 변하지 않은 것 같다.

찜통 더위에 소설을 잡았다가는 솔직히 끝낼 자신이 없고, 그렇다고 역사책을 읽자니 그것도 맹물 씹는 기분이어서 선뜻 내키지 않는 독자들한테는 소설의 재미와 역사의 의미를 겸한 이 책이 제격이다.

*** 없앤 기록 되살리는 사가

한국역사연구회가 과학적 역사학 수립에 성공했는지의 여부는 나의 판단 밖이나, 연구 성과의 대중화에는 큰 소득을 거둔 듯하다.

필자 한 분의 관찰대로 "권력 투쟁에서 이긴 사람은 자신의 권력을 정당화하는 기록을 남기고 불리한 기록을 없애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패자의 흔적은 사멸하지 않고 후대의 사가에 의해 되살아나기도" (75~76쪽) 한다면, 훌륭한 연기자를 만난 궁예 못지 않게 이 책을 통해 되살아나는 모반의 주역들 역시 그 '후대의 사가' 를 아주 잘 만난 것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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