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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이 났어요, 다신 저렇게 살지 않을래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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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영화 ‘범죄소년’에서 소년원을 드나드는 지구(서영주·왼쪽)는 13년 만에 찾아온 엄마 효승(이정현)과 잠시나마 행복에 빠진다. [사진 타임스토리]

“재범이고, 보호자도 없으니 10호 처분입니다.”(가정법원 판사)

 일반 관객 같으면 의미도 알아듣지 못할 법정용어에 관객들이 자지러진다. “한번만 용서해주시면 안돼요, 형사님?”이란 대사에서도 폭소가 터졌다. 30일 오후 영화 ‘범죄소년’(강이관 감독·다음 달 22일 개봉) 시사회가 열린 서울 휘경동 서울보호관찰소 대강당 풍경이다.

 이날 객석은 특별한 관객들이 채웠다. 서울지역 청소년 보호관찰 대상자 200여 명이다. 범죄를 저지른 14세 이상 19세 미만의 청소년 중 재범을 막거나 소년원 퇴교 후 사회적응을 돕기 위해 사법당국이 특별히 관리하는 ‘범죄소년’들이다.

 이날 오전에는 경기도 의왕시 서울소년원에서도 시사회가 열렸다. 영화가 완성되면 가장 먼저 소년원생과 보호관찰 청소년에게 보여주겠다는 강 감독의 약속에 따른 것이다.

30일 서울보호관찰소에서 열린 ‘범죄소년’ 시사회에 참석한 배우 서영주(가운데)와 강이관 감독(왼쪽).

 영화는 국가인권위원회(현병철 위원장)가 기획·제작했다. 인권위가 2002년부터 인권 홍보 차원에서 만들어온 영화 중 ‘날아라 펭귄’(2009·임순례 감독)이후 두 번째 장편이다. 28일 폐막한 도쿄 국제영화제에서 범죄소년 지구를 연기한 서영주(16)가 최연소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시사회에는 강 감독과 배우 서영주, 엄마 효승을 연기한 이정현(32)이 참석했다. 영화 ‘꽃잎’, 가요 ‘와’의 배우이자 가수인 이정현이 12년 만에 스크린에 얼굴을 비쳤다. 영화는 보호관찰 중 절도를 저질러 소년원에 들어간 지구가 13년 만에 찾아온 엄마를 만나며 감춰진 진실과 마주하게 된다는 내용이다. 행복도 잠시, 모자는 냉혹한 현실과 사회의 냉대를 겪는다. 범죄의 재생산, 대물림 구조가 묘사됐다.

 ‘범죄소년’은 법원·경찰서·소년원 등에서 촬영됐다. 강 감독은 4개월간 소년원에서 살다시피 했다. 팔짱을 낀 채 냉소적으로 관람하던 보호관찰 청소년들은 점점 영화에 몰입돼갔다. 가정법원 판결, 야간외출 제한, 재택확인 전화 등 자신들이 겪은 일들이 스크린에 펼쳐지자 큰 웃음이 터져 나왔다.

 인권위 홍보담당 김민아씨는 “외면하고 싶은 현실이기에 더욱 과장된 반응을 보인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또 “소년원의 한 원생은 ‘우리들을 위한 영화지만 보호자들도 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며 “엄마·아빠가 아닌 보호자라고 표현한 것이 가슴 아팠다”고 했다.

 보호관찰소 시사에서는 많은 질문이 쏟아졌다. 소년원에 다시 들어간 지구를 기다리며 엄마가 함께 살 집을 구하는 마지막 장면이 허무하다는 지적이 많았다. 이에 대해 강 감독은 “어려운 현실에서 고군분투하는 엄마의 얼굴에서 희망을 보여주려 했다”고 답했다.

 “문신이 있으면 영화배우가 될 수 없나”라는 질문도 나왔다. 이에 강 감독은 “될 수 있지만 배역의 폭이 좁아진다”고 답했다.

 한 소년은 “지구가 투병 중인 할아버지를 두고 소년원에 들어가는 장면을 보고 나도 그런 경험이 있어 눈물이 났다”고 말해 분위기를 숙연케 했다. 강 감독은 “여기 있는 청소년들은 영화를 통해 자신들이 살아온 과정을 거울 보듯 객관적으로 봤을 것”이라며 “사회의 구박과 냉대에 위축되지 말고 당당히 살아야 한다”고 충고했다. 두 배우는 “영화의 따뜻한 마음이 전달됐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간담회가 끝나갈 무렵 한 청소년이 종이에 적은 소감이 단상에 전달됐다. ‘다신 저렇게 살지 않을래요. 뭐라도 한 가지는 배워서 미래를 설계하겠습니다. 그리고 아무리 힘들고 화나도 참을래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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