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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책에 날개를 달아주자"

중앙일보

입력

'원소스 멀티유즈' , 즉 하나의 콘텐츠로 다양한 문화상품을 만들어내는 최신 흐름에 국내 아동출판계가 뛰어들고 있다.

한층 수준이 높아진 창작 콘텐츠를 기반으로 연극.음악.전시 등 활동영역을 넓히고 있는 것이다.

제10회 '서울 아동청소년 공연예술축제' 에 권정생의 그림동화를 대사없이 재구성한 '강아지똥' (극단 모시는 사람들, 31일~8월 7일, 학전그린) 과 김회경의 옛이야기를 판소리극으로 만든 '똥벼락' (극단 민들레, 28일~8월 5일, 문화일보홀) 이 무대에 올려진다.

또 그림책 『노란 우산』의 부록CD에 담겼던 음악들은 '어린이를 위한 피아노 한마당' (28.29일, 판 아트홀) 에서 영상과 결합된 형식으로 어린이들을 만난다. 사계절출판사와 갤러리 사비나가 공동기획한 '그림 속 그림 찾기전' (28일~8월 26일) 도 좋은 예다.

이 중 앞으로 연극.애니메이션으로도 선보일 황선미의 장편동화 『마당을 나온 암탉』(사계절.7천원) 에 주목하는 것은 작가와 출판사, 그리고 재창작자 사이의 긴밀한 호흡 때문이다. 좋은 책이 콘텐츠로 어떻게 다양하게 옷을 갈아입을 수 있는가 하는 모델이기도 하다.

1990년대 아동문학계의 수확으로 꼽히는 작가 황선미씨와, 출판 콘텐츠를 이용한 사업 개발을 하고 있는 사계절출판사의 명연파 상무, 그리고 극단 민들레의 송인현 대표가 만나 그들 사이의 새로운 도전을 이야기했다.

▶사회〓지난해 5월에 처음 출간된 『마당을 나온 암탉』은 연말에 성인용 양장본으로도 선보였을 만큼 작품성이나 주제 모두 어른이 읽기에 손색없는 동화다. 비좁은 양계장에서 무정란만을 낳게 돼있는 암탉 '잎싹' 이 알을 품어 병아리의 탄생을 보겠다는 일념으로 험한 세상에 뛰어들어 자신의 삶을 개척하는 과정이 참 감동적이다.

▶황선미〓막내인 나를 아껴주시던 아버지가 암으로 고생하시다 돌아가실 무렵에 쓴 작품이라 『나쁜 어린이표』같은 전작보다 다소 무겁게 느껴졌을 것이다. 삶과 죽음, 그리고 다양한 관계와 사랑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던 계기였다.

▶송인현〓잎싹이 애틋하게 품어 키우던 청둥오리 새끼를 청둥오리 무리에게 돌려보내는 모습이나, 족제비도 스스로의 생존과 새끼들을 위해 자신을 그렇게 괴롭혀왔다는 것을 깨달은 잎싹이 거의 자진해서 목숨을 내놓는 마지막 부분은 가슴 뭉클했다. 그래서 이 책을 읽자마자 어린이극으로 만들 결심이 섰다. 어린이극도 문학과 출판 장르에서 탄탄하게 받쳐줘야 한다.

▶황선미〓작가로선 기쁜 일이다. 항상 작품을 쓸 때 그것으로 끝나지 않고 다른 장르의 문화상품으로 어린이들에게 더 많이 접해지길 바란다.

▶명연파〓우리 출판사가 먼저 어린이극으로 만들어보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하긴 했지만 저수지나 갈대밭 같은 배경이나 청둥오리가 일시에 날아오르는 장면 등 극화하기엔 어려운 요소들이 많다고 생각했다.

▶송인현〓어린이극이야말로 여러 실험이 가능한 좋은 무대다. 아이들은 상상력이 풍부하기 때문에 어른들 눈엔 시시해보일지 모르는 무대장치도 그대로 받아들인다. 이를테면 잎싹이 청둥오리 새끼인 '초록머리' 를 데리고 지내는 갈대밭을 표현할 땐 갈대복장을 한 배우들이 죽 늘어서서 팔을 쭉 펴고 있게 할 참이다. 조금씩 몸을 흔들기만 해도 아이들은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로 느낄 것이다.

▶사회〓언제쯤 무대에서 볼 수 있나.

▶송인현〓내년 1월께 가능할 것이다.

▶사회〓기획기간이 그렇게 긴가.

▶송인현〓영상으로 처리하면 간단할 몇 장면에 대해 색다른 시도를 하기 위해서다. 박재동 화백의 '오돌또기' 가 제작할 애니메이션과는 확실히 차별화해야 하지 않겠는가.

▶사회〓기대가 된다. 그런데 정말 아무리 원작이 좋아도 이렇게 다른 장르를 개척하는 데는 출판사의 중간 역할이 중요한 것 같다. 해외에도 수출계약을 했다던데.

▶명연파〓지난 4월 도쿄(東京) 국제도서전과 6월 서울 국제도서전을 이용해 일본.대만 출판사와 상담한 결과 각각 2천달러의 선불을 받고 계약했다. 로열티도 각 권당 6%씩, 그리고 판매부수 1만부 이상부터는 7%씩 받기로 했다. 우리나라 출판사들이 유명한 외국 작품을 수입할 때의 조건과 비슷하다.

▶송인현〓공연 수익금 중에서도 작가에게 로열티를 주기로 합의했다. 국내 연극계에선 원작자에게 로열티를 지불한 예가 거의 없었다.

▶사회〓작가도 정당한 대가를 받아야 더 좋은 작품에 전념할 수 있는 것은 당연하다. 잎싹을 캐릭터 상품화하는 건 어떤가. 만화 주인공만 캐릭터 상품화할 것 있나. 요즘 '엽기 캐릭터' 가 유행이니 비쩍 마르고 깃털이 다 빠진 잎싹도 인기가 있을 것 같다.

▶명연파〓그것도 연구해보겠다. 아무튼 방정환 선생 이후 꽃피지 못하고 있는 아동문화운동을 되살릴 방법을 모색하는 것도 어린이책 출판사의 의무라고 생각한다.

▶사회〓탄탄한 원작이 있어야 가능한 얘기다. 작가의 어깨가 그만큼 무겁다.

▶황선미〓공감한다. 『마당을…』 이후 나에게 이런 묵직한 동화를 기대하는 이들이 많아 조금 부담스럽다. 다른 작가들이 찾아내지 못한 소재들을 발굴해 아이들의 살아있는 이야기들을 다양한 스타일로 보여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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