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와이엔 돈 널려…" 소문 듣고 이민 행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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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포와(布.하와이)에 가면 빗자루로 땅을 쓸어도 돈이 나온다더라."

초창기 하와이 이민은 가난과 배고픔에서 벗어날 수 있는 탈출구로 여겨졌다. 1902년 고종 황제는 하와이로의 한인 송출을 허가했다. 그해 하와이 사탕수수농장주 협의회의 대표가 들어와 한인 노동자들의 수입을 요청한 데 따른 것이다. 당시 대한제국은 연이은 흉년으로 아우성치던 민초들의 배고픔을 어떻게든 해결해야 했다.

그해 겨울 제물포에서 1백21명이 수송선인 갤릭호에 실려 '포와'로 출발했고, 중간 기착지인 일본 나가사키(長崎)에서 신체검사를 한 결과 19명이 탈락했다.

해를 넘긴 1월 13일 호놀룰루 땅을 밟은 이들은 1백2명. 이후 하와이 노동자들의 반일.독립운동을 우려한 일본의 압력으로 대한제국이 인력 송출을 금지한 1905년 4월까지 7천2백26명이 65척의 이민선을 타고 하와이로 떠났다(하와이 이민기념사업회 추산).

1912년부터 미국 정부가 아시아계 이민을 전면금지한 1924년까지 태평양을 건너온 사진에만 의지해 9백51명의 신부들이 하와이에 도착했다.

중노동과 가난 속에서도 한인들은 특유의 근면함과 교육열로 자리를 잡아갔다. 1910년대 이미 농장을 벗어나 여관.식품점.교사 등 자영업.전문직으로 진출한 한인들이 한인 신문에 등장할 정도였다.

1941년 태평양 전쟁이 벌어지자 한인들은 대거 도시로 나가 각종 근로사업과 자영업에 뛰어들었다. 한인들은 이미 1970년 인구조사에서 백인을 포함한 모든 인종 중에서 최고 소득을 기록할 정도로 안정된 기반을 갖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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