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DVD리뷰]잃어버린 아이들의 도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보고나면 왠지 자신의 머리가 좋아진듯한 느낌이 드는 영화들이 있습니다. 괜찮은 범죄스릴러물들이나 다소 철학적인 작품들, 아니면 진지한 SF물들이 이범주에 들어갈수 있습니다, 또 어떤영화들은 보고나면 너무 행복해지는 것들도 있죠. 디즈니나 지브리사의 애니메이션들 대부분이 이범주에 들어갈수 있겠습니다.

장 삐엘 주네와 마크 까로감독의 〈델리카트슨〉을 보았을때, 밀물듯 몰려드는 행복감을 맞볼수 있었습니다. 도무지 나아질것 같지않은 상황속에서도 피어오르는 사랑과 이로 인하여 가지게되는 희망. 그리고 또한 제 머리까지 좋아지는듯한 느낌도 가질수 있었죠. 표현이 조금 이상한가요? '머리가 좋아진듯한 작품'이란 대부분 저의 경우에 있어서 영화를 보고난뒤 "이 영화를 만든사람은 천재다"라고 느꼈던 작품들입니다. 그리고 〈델리카트슨〉을 보고서 저는 감독이 천재라고 느꼈습니다.

데뷰작에 이어 16년동안 단편과 CF, 뮤직비디오에서부터 공동작업을 해왔던 주네 & 까로 콤비감독의 두번째 영화는 〈잃어버린 아이들의 도시〉였습니다. 당시 코아 아트홀에서 상영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만, 데뷔작만큼의 충격을 주진 못하였습니다.

이 영화가 DVD로 출시되었을때, 무의식적으로 타이틀을 구매하였습니다. 그리곤 한번도 제대로 DVD를 다시보지 않았습니다. 단지 예고편만을 계속해서 봤을 뿐이죠. (이 영화의 예고편은 상당히 좋습니다. 안젤로 바달라멘티의 음악에 맞추어 꿈틀거리는 초록색 악몽은 몽환적이며 어목렌즈에 비쳐진 등장인물들의 기괴한 모습들은 짧은시간안에 영화의 모든것들을 이야기 해주고 있습니다. 예고편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제가 유일하게 영화 본편보다 더 좋아하는 예고편이 있습니다. 바로 알렉스 프로야스감독의 다크시티죠. 왜 본편을 좋아하느냐구요? 다크시티의 예고편에 나오는 그 음악을 영화본편에선 들을수 없기때문입니다.)

어느날 이 영화의 DVD를 꺼내선 다시한번 보게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영화가 생각보다 많은 영상들과 이야기들을 담고 있었다는걸 그제서야 알게되었습니다.

자 한번 볼까요? 영화속에 나오는 사이클롭스가 모여있는 장면들은 바로 위에서 제가 언급했던 하지만 훨씬 이후에 제작된 다크시티의 장면과 유사합니다. 사이클롭스들이 아이들을 크랑크에게 데려가는것도 그렇죠. 크랑크는 꿈을 꾸기위하여 아이들을 사이클롭스로부터 사들이지 않습니까? 다크시티에서 사람들의 기억을 취하는 설정과 유사합니다.

사이클롭스의 복장을 한번 볼까요? 96년에 개봉된 스타트렉: 퍼스트 컨텍에서 등장하는 보그족의 복장과 흡사합니다. 비록 보그족처럼 함께 보고 함께 느끼는 존재들는 아니지만, 총같이 생긴 인공귀로 인하여 동시에 반응하는 장면은 보그족의 설정에 영향을 주었음직합니다.

벼룩에 의하여 조종받는 사이클롭스가 자신의 동료두명을 죽이는 장면에서, 동료의 인공눈에 연결된 선을 제거하고선 자신의 인공눈에 연결된 선으로 연결하는 장면이 있죠. 그럼으로써 죽는자는 자신이 죽어가는 모습을 바라보며 죽게됩니다. 이 섬뜩한 장면은 오시이 마모루가 같은해 (하지만 잃어버린 아이들의 도시보단 조금뒤에 개봉된) 공각기동대의 마지막 장면과 사실상 같습니다. 쿠나사기가 인형사의 몸속으로 들어가 자신의 얼굴을 쳐다보는 장면은, 자신의 얼굴을 디지털화된 영상으로 보면서 죽어간 사이클롭스와 흡사하죠.

원 (ONE)의 어린동생 (친동생은 아니지만)을 구하기위하여 미엣이 꿈에 들어가 구출하는것은 〈더 셀〉에서 또한번 써먹힙니다.그리고 미엣의 눈물로 인하여 선착장을 들이박는 배의 장면은 장드봉이 〈스피드2〉에서 그대로 써먹었습니다.(감독은 스피드2뿐만 아니라 고질라와 잃어 버린 세계까지 언급하더군요) 그리고 사실 장면상의 연관성은 없지만, 영화속 미엣과 함께 주인공으로 출연한 롤 펄만의 극중이름은 원 (One)이지 않습니까? 매트릭스의 니오(Neo)의 의미이기도 한 이름이죠.

공동감독중 한명인 장 피엘 쥬네의 최초의 단독감독작품인 에어리언4는 그 비쥬얼이나 소재, 등장인물에 있어서 사실상 〈잃어버린 아이들의 도시2〉라고 불리워도 할말이 없는 작품입니다. 전혀 새로울게 없었죠. 재미있는것은 〈잃어버린 아이들의 도시〉에선 창조주인 과학자를 주네감독은 죽여버리지만 〈에어리언4〉에선 자식인 에어리언을 생명을 준 어머니가 죽인다는 것이죠.

그렇다고 이 영화가 다른영화들의 영향을 전혀 받지않은것은 아닙니다. 원이 등장하는 첫장면은 당연히 페데리코 펠리니의 〈길〉을 연상시키죠. 원과 미엣의 관계는 잠파노와 젤소미나의 그것과 흡사합니다. 뇌의 형태인 어빈은 총몽에서의 자팡의 이미지를 빌려왔다고 생각될수도 있으며, 여섯 클론들이 고함칠때 깨어지는 유리들은 양철북에서 빌려온것입니다. (이들의 어머니격인 난쟁이 여인은 양철북의 캐릭터와 많이 닮아있기까지 합니다.)

옛날옛적에 한 과학자가 있었답니다. 이 사람의 실력은 대단하여 생명을 직접 만들수 있는 단계에까지 이르렀죠. 가족이 없었던 그는 자신의 손으로 직접 자신의 아내를 만듭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를...하지만 이 여인은 치명적인 유전적 결함이 있었고 난장이로 만들어지고 말았습니다. 이번엔 자신을 본딴 여섯아이들을 만들기로 하였죠. 이들은 서로 구별이 불가능할 정도로 닮게 만들어졌습니다. 하지만 이들 역시 갑자기 잠들어버리는 결함을 가지고 있었죠. 이번엔 자신의 말동무로 수족관에다가 뇌를 만들어 키우게 되었으나 이 뇌 역시 편두통을 앓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이 과학자는 자신의 걸작을 만들기로 합니다. 세상의 그 누구보다도 똑똑한 아이를 말입니다. 그리곤 성공하죠. 근데, 이 아이 역시 결함이 있었으니 꿈을 꿀수없는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꿈꿀수없는 불행으로 너무나도 빨리 늙어만갔죠. 이 똑똑한 아이는 어느새 노인이 되었고, 눈물을 흘리게되면 꿈을 꿀수도 있을꺼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어느날 똑똑한 아이, 아니 어느덧 노인이 되어버린 크랑크는 자신에게 빠른죽음을 가져다주도록 창조해준 아버지와 싸우게됩니다. 그리곤 다툼끝에 자신의 창조주를 바다속으로 빠트려 버리죠. (블레이드 러너를 연상시킵니다.) 이제 스스로 바다위의 작은세계속에서 주인이되어 아버지의 형상과 똑같이 만들어진 여섯형제들과 어머니의 주인으로 군림하며 꿈을 가지기위하여 아이들을 끌어들이게 됩니다. 그런데, 아이들의 꿈을 훔칠려고 할때마다 아이들이 꾸는꿈은 악몽으로 변합니다. 자신의 창조자를 죽인 노인아이 혹은 아이노인은 행복하게 될수가 없었습니다.

주인공인 원과 미엣은 서로간의 정신연령이 뒤바뀐 듯 합니다. 원은 어른임에도 불구하고 행동은 어리며, 미엣은 어린이임에도 불구하고 행동은 어린이다운 구석이 별로없죠. 사실 이 도시에서 등장하는 거의 모든 아이들에게서 어린이다운 구석을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그런의미에서 크랑크가 아이들로부터 악몽만을 받았었던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원의 동생 단리를 제외한다면 말입니다. 그렇다면 단리는 예수와도 같은 존재일까요? 그 꼬마가 없다면 잃어 버린 아이들의 도시는 크랑크와 같은 결말을 맞이하게 되는 것인가요?

미엣과 함께 원은 결국 꿈없는 (혹은 꿈은 있으되 악몽만이 존재하는) 세상에서 동생을 구해내고 스스로 꿈꾸지 못하는 크랑크는 결국 최후를 맞이합니다.

영화는 감독들의 데뷔작뿐만 아니라 이후 〈에어리언4〉에서도 호흡을 맞춘 그리고 우리에겐 〈세븐〉으로 더 유명해진 다리우스 콘지가 맡았습니다. 영화와는 피터 그리너웨이의 〈요리사, 도둑, 그의 아내, 그리고 그의 정부〉로 최초로 인연을 맺었고 우리에겐 역시 〈제5원소〉로 유명한 장 폴 고티에르가 의상을 맡았으며 주로 데이빗린치감독의 작품들을 작곡해온 안젤로 바달라맨티의 아마도 가장 아름다운 오리지널 스코어들로 영화는 수놓아져 있습니다. 또한 〈걸 온더 브릿지〉의 주제곡인 매리엔 페이스풀의 'Who will take my dreams away'가 시종일관 영화속을 흐르고 있는데, 앤딩곡으로도 사용되며 영화의 주제와 어울려 묘한 느낌을 줍니다.

〈잃어버린 아이들의 도시〉는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공식출품되기도 하였습니다. 뤽베송의 근작들이 할리우드화되었다하여 자국에서 혹평받는 것에 비하면 감독의 데뷔작과 함께 이 작품은 제작의 대규모화에도 불구하고 자국에서 호평을 받았었습니다. 하지만 이후 〈에어리언4〉로 변절자로 취급당했기 때문인가요? 감독의 최신작이자 금번 부천영화제 폐막작이기도 한 〈아멜리에〉는 올해 칸경쟁부문에 노미네이트되지 못하였습니다. 하지만 최근 프랑스에서의 인기는 어떠한 칸 경쟁부문 작품들보다 앞서나갔습니다. (감독이 금번 칸영화제의 공식경쟁부문에 자신의 작품 〈아멜리에〉가 선택되지 못한데 대한 항의표시로 야외상영을 취소하였다는 기사는 잘못된 것이었습니다. 단지 기술적 문제로 취소되었을 뿐이었습니다.)

영화는 놀라운 비쥬얼에 비해선 비교적 저예산으로 만들어 졌는데 (감독은 코맨터리에서 시종일관 "값싼영화였다. 18백만불로 이정도까지 만드느라 생각했던 것들을 많이 시도하지 못했다"는 등등의 이야기를 합니다.) 감독은 〈쥬라기공원〉을 예로들며 헐리우드가 가장 큰 생명체인 공룡을 CG로 만들었을때 자신은 가장작은 생명체인 벼룩을 CG로 만들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장 삐엘 주네감독과 원으로 분한 론 펄먼의 코맨터리는 에어리언4를 만든후에 영화를 같이보며 DVD를 위하여 녹음되었습니다.

DVD의 화질은 썩 좋은편이 못됩니다. 어두운 장면에선 위에서 아래로 검은 얼룩이 나타납니다. 하지만 자세히 보지 않고선 눈에 띌정도는 아닙니다. DTS로 녹음된 영화이지만 사운드는 돌비 프로로직만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장 폴 고티에르의 의상 디지인 갤러리와 제작세트 스케치 갤러리, 그리고 스텝들의 필모그래피가 있습니다. 정작 DVD뒷면에는 표기가 되어있지 않지만 감독과 론 펄먼의 코맨터리가 영화와 함께 수록되어있습니다. 영어로 진행되는 이 코맨터리에서 주네감독은 아예 처음부터 자신의 Bad English를 용서해달라고 하지만, 그의 영어발음은 네이티브가 아니고선 알아듣기가 힘들정도입니다. 차라리 감독만의 프랑스 코맨터리를 진행시키고 자막을 넣었으면 좋았을꺼란 생각이 듭니다.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델리카트슨을 잊지 못하는 여러분들에겐 괜찮은 타이틀일 것입니다. 영화자체가 워낙에 좋으니깐요. 더군다나 〈델리카트슨의 사람들〉은 아직 DVD로 출시가 되어있지 않으니 현재로서는 두명의 콤비감독의 작품을 DVD로 볼 수 있는 작품은 〈잃어 버린 아이들의 도시〉가 유일합니다. 안젤로의 음악을 5.1채널로 들을수 있는 스페셜 에디션이 나오길 기대해봅니다.

지역코드: 1번
상영시간: 112분
등 급: R등급 (조금은 이해가 되지 않는 등급입니다)
자 막: 영어, 불어, 서반아어 서브타이틀지원
화 면 비: 1:85:1 및 4:3 (양면)
사 운 드: DD 2.0 (영어, 불어, 서반아어)
서플먼트:
. 감독과 론 펄먼의코맨터리 (자막 무지원)
. 극장예고편
. 장 폴 고티에르의 의상 디자인 갤러리
. 제작세트 스케치 갤러리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