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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이 촌스러움, 그게 디자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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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싸이와 지드래곤의 포스터 앞에 선 장성은(35) YG엔터테인먼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국내 대중문화 산업이 커지면서 그의 활동영역도 확대되고 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디자인의 시대다. ‘디자인은 인간이 만든 창조물의 본질적인 영혼’(스티브 잡스)이라는 말처럼 21세기 디자인은 삶을 개선하려는 모든 시도를 포괄한다. 중앙일보가 ‘K-디자인, 10인이 말한다’를 시작한다. 서울 예술의전당과 함께 한국(Korea) 디자인의 오늘과 내일을 보여줄 대표 인물 10인(팀)을 선정했다. 첫 주자는 YG엔터테인먼트 장성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다.

전 세계에 ‘강남 스타일’ 열풍을 몰고 온 ‘싸이 6갑(甲)’ 앨범. 깡통 같은 둥근 케이스에 반구형 뚜껑을 씌웠다. 바다를 헤엄치는 인어 그림이 들어 있는데, 꼬리가 6자로 구부러져 6집을 뜻하며 인어의 얼굴은 천연덕스럽게도 싸이다. 앨범마다 새로운 캐릭터를 넣는 게 싸이의 특징. 예쁘지 않아도 좋은, 싸이의 투박한 ‘B급’ 이미지가 앨범에도 반영됐다.

 디자인, 무조건 아름답고 거창한 것만은 아니다. 지름 15㎝가량의 이 손바닥만 한 음반, 생활 속에서 만나는 디자인이다. 싸이 6집 앨범의 디자인 책임을 맡은 이가 있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장성은(35)이다.

 싸이뿐만이 아니다. 그가 매만진 빅뱅의 미니 5집 ‘얼라이브(ALIVE)’도 ‘앨범의 진화는 어디까지인가’ 하는 미학적 충격을 줬다. ‘얼라이브’는 여러 어려움을 겪고 공백기를 넘긴 빅뱅의 재기 앨범이다. 차가운 은색 스틸 케이스를 썼다. 부식방지 가공을 안 해 세월이 가면 자연스럽게 녹슬게 돼 있다. 장씨는 뮤직 비디오나 콘서트의 시작도 소년들이 얼음을 깨고 나오듯 연출해 이미지를 통일했다.

 서울 합정동 YG엔터테인먼트로 장씨를 만나러 갔다.

올해 나온 빅뱅의 ‘얼라이브’ 앨범은 녹이 스는 스틸 케이스로 만들었다. 어려운 사건을 겪고 더 단단해졌을 빅뱅의 재기를 상징한다(사진 왼쪽). 화제의 ‘싸이 6갑(甲)’ 앨범. 싸이다운 B급 이미지를 100% 활용해 어른들의 장난감처럼 만들었다(가운데). 태양의 정규 1집(2010). CD를 돌리면 재킷의 해 모양 그래픽이 움직이는 듯하다(오른쪽). [사진 YG엔터테인먼트]

 # 명문 레이블의 척도, 디자인

 엔터테인먼트 디자이너-.

 얼리 어답터가 많은 디자인 업계에서도 생소한 분야다. 장씨를 주목한 이유는 일상의 모든 게 디자인이며, 음반과 가수의 브랜드 정체성 또한 디자인의 결정적 요소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대중음악 산업의 급성장과 함께 최근 대형기획사들은 앨범 디자인도 외주방식에서 탈피해 별도 디자인팀을 두고 있다. 음악, 나아가 가수의 얼굴인 앨범 재킷의 중요성을 주목한 것이다.

 장 디렉터는 이 같은 변화의 전위에 있다. 양현석 프로듀서의 영입으로 2009년 YG에 합류, 디자인센터를 만들었다. 연예기획사의 디자인실 신설은 SM에 이어 두 번째다. 팀원은 그를 포함해 5명, 직원 120여 명 규모의 이 회사에서도 미니팀이다. 소속 가수들의 음반·포스터 및 각종 연계 상품을 만드는 게 주요 업무다.

 - 디자인 좋다고 앨범이 잘 팔리나.

 “디자인의 역할은 시너지를 높이는 것이다. 예컨대 지드래곤의 브랜드 가치는 천재적 음악성뿐 아니라 뛰어난 패션감각에서도 나온다. 각 아티스트에 대한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하고 있다.”

 - 가수들의 앨범 이라면 잘생긴 얼굴 사진을 전면 배치한 것들이 떠오르는데 당신 디자인은 훨씬 미니멀하다.

 “비주얼로 승부하는 디자인에는 한계가 있다. 아티스트별로 일관성·연속성을 부여하고자 한다. 싸이의 경우가 그랬다. 노래(콘텐트)와 앨범 디자인(형식)을 일치시켰다 .”

 음반의 기본틀은 개당 200원 내외의 플라스틱 케이스. 여기에 디자이너의 손길과 ‘재료 욕심’이 들어가면 단가가 1000원을 넘긴다. 음반 디자인에 투자하는 것은 소규모 기획사로서는 모험인 셈이다.

 하지만 외국음악계에서 음반디자인은 매우 중요한 요소다. 송기철 대중음악평론가는 “재킷 디자인은 그 안에 든 음악을 대변한다. 명문 레이블의 기준에는 음악·프로듀싱뿐 아니라 디자인도 포함된다”고 말했다.

 # 13년차 음반 디자이너

 딱히 이 길을 가리라는 생각은 없었다. 장씨는 네 살 때부터 피아노를 쳤고, 줄곧 음악을 하게 될 줄 알았다. 디자인을 만난 것은 포항 한동대 2학년 때. 학부제였던 이곳에서 산업디자인 수업을 들으면서, 협업하며 밤새는 재미를 알았다.

 그는 4학년 때 국내 첫 음반 디자인 전문회사인 지직(gigic)에 들어갔다. 3년간 찬물만 나오는 지하 사무실에서 대표와 단 둘이 출퇴근하며 청소·설거지 등 허드렛일도 도맡았다. 그렇게 10년을 지내며 기획사들의 각종 앨범을 외주 제작했다. 음반 시장이 불황을 겪으며 오히려 패키지 디자인에 신경 쓰게 된 시기였다.

 “널려 있는 요소를 조합해 통일감 있게 만드는 게 디자인입니다. ”

 그런 그가 생각하는 좋은 디자인은 ‘마이너스’ 그리고 ‘목적이 이끄는 디자인’이다.

 “안 예쁘다고 덧붙이다 보면 더 조잡해집니다. 또한 살아가는 목적이 분명치 않으면 이리저리 흔들리게 마련이듯 디자인에서도 본질을 살리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싸이의 투박함이 세계에 통한 것도 그런 이유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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