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매사 추천펀드가 최고 펀드는 아닙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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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한 외국계 운용사에서 마케팅을 담당하는 A씨. 해외 펀드에 가입할 생각으로 최근 같은 건물에 입주한 한 시중은행을 찾았다. 원화 강세 흐름이 이어진다는 전망이 우세한 데다 최근 해외 채권 수익률이 좋아 내심 하이일드 채권 등 해외 채권펀드를 추천해 줄 거라 기대했다. 그러나 “해외 펀드를 추천해 달라”는 요구에 은행 직원은 거의 자동으로 이 은행 계열 운용사가 최근 내놓은 중국 본토 펀드를 권유했다. “비슷한 중국 펀드가 이미 있으니 하이일드 채권 펀드가 어떻겠느냐”고 묻자 은행 직원은 “그렇게 위험하고 복잡한 걸 왜 하느냐”며 말렸다. 이 은행의 투자등급상으로 보면 중국 본토 주식형 펀드가 해외 하이일드 채권 펀드보다 위험도가 더 높다. 결국 A씨는 “직접 온라인으로 가입하겠다”며 리스트를 받았다. 그러나 온라인으로 들 수 있는 하이일드 채권으로는 이 은행 계열 운용사가 내놓은 펀드가 한 개밖에는 없었다.

 한 증권사 창구를 찾은 직장인 B씨. “펀드에 가입하고 싶다”고 했더니 창구에선 딱 두 상품을 추천했다. 계열 운용사가 열심히 광고하는 글로벌 채권 펀드와 소비재 주식을 담은 주식형 펀드였다. B씨는 “올 들어 중소형주 펀드 등이 수익률이 좋다기에 그런 펀드도 소개해 줄 걸로 기대했다”며 “그러나 이 증권사 추천 펀드 외엔 아무런 정보도 얻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두 사례의 금융회사는 모두 계열사 펀드 판매 비중이 70%를 넘는 곳이다. 이보다 계열사 판매 비중이 낮은 다른 곳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은행·증권사 등 판매사에서 많이 파는 대표 펀드는 이렇게 계열사 몰아주기용 펀드이거나, 아니면 당시 유행하는 펀드가 대부분이다. 고객의 투자 성향이나 장기 수익률이 좋아서라기보다 당장 판매하기 쉬운 펀드를 고객에게 권한다는 얘기다. 그렇다 보니 투자자는 계열 금융지주가 없는 독립 운용사나 외국계 운용사 펀드에 투자하기가 쉽지 않다. 강방천 에셋플러스 회장은 “이런 판매구조 때문에 좋은 펀드가 외면받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한 외국계 운용사 관계자도 “다양한 포트폴리오를 국내 투자자에게 소개하고 싶은데 판매사가 아주 제한적으로만 팔아주기 때문에 결국 당대에 유행하는 펀드를 대형 판매사를 통해 팔 수밖에 없다”며 “그 판매사는 또 계열 운용사에도 비슷한 펀드를 만들라고 요구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같은 시기엔 비슷한 상품만 판매되는 경우가 많다”고 아쉬워했다. 그는 또 “과연 1년 후에도 이 펀드의 인기가 지속될지 알 수 없지만 당장 딱 한 개만 팔라고 하면 어쩔 수 없이 인기 펀드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판매사가 아무리 수백 개의 펀드를 판다 해도 투자자는 결국 당시 유행하는 펀드를 고를 수밖에 없는 구조다. 예컨대 외국계 운용사에서는 하이일드 채권 등 다양한 해외 채권을 이미 2010년부터 출시했지만 당시엔 일부 외국계 은행 등에서만 팔아줬다. 하지만 최근 해외 채권 펀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자 국내 운용사까지 앞다퉈 비슷한 펀드를 내놓으면서 시장엔 비슷한 펀드가 쏟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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