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무질서의 세계로 들어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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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정지하고 있는 모든 것을 혐오하지. 그는무질서란 삶이요 질서란 죽음이라고 주장하고 있어. '판타 레이'(Panta Rei), 만물은 흐른다고 그는 말하지. 그리고 흐르고 있다면 이는 살아 있다는 것을 뜻한다고강조하지"(84쪽) 지옥과 천당 사이의 림보에 있는 소크라테스는 '무질서의 옹호자'가 누구인지를묻는 질문에 헤라클레이토스를 지목하며 이렇게 대답한다.

「나는 무질서한 것이 좋다」(한길사.정경옥 옮김)에는 이같은 소크라테스와의대화처럼 기발한 상상력이 돋보이는 질서와 무질서에 관한 16가지 에피소드가 등장한다.

아폴론과 디오니소스, 파르메니데스와 헤라클레이토스, 축구선구 리베라와 마라도나 등 각각 질서와 무질서를 대표하는 상호대립적인 이들의 에피소드는 질서와 무질서의 어울림이 뭔지를 생각하게 한다.

저자 루치아노 데 크레셴초는 자신의 삶을 통해서도 질서와 무질서에 관한 단상을 제공한다.

IBM 밀라노 지사장으로 일하던 50대 나이에 전업작가를 선언하면서 직장을 떨치고 나온 데 크레셴초는 「판타 레이」「그리스 철학사」로 이탈리아 최고의 인기작가가 됐고, 현재는 연극연출가, 영화감독, 영화배우, 사진작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직장생활이 질서가 필수불가결한 요소로 간주되는 삶이라면 그 이후의 삶은 무질서가 상당한 자질이 되는 예술가적 삶이다.

"무질서는 꿈을 만들고 질서는 그 꿈을 현실로 만든다"는 저자가 생각하는 세계는 질서와 무질서가 한쪽으로 편중되지 않고 균형잡힌 세계, '창조적 울림'이 있는세계이다. 이런 면에서 그는 창조적 울림을 구현한 삶을 사는 셈이다.

개인적인 경험과 유머, 허구, 전문적 지식을 한데 섞어 거리낌없이 기술하는 그의 다른 책들과 마찬가지로 이 책도 어느 한 장르에 포함시키기 모호하지만 굳이 분류하자면 '퓨전'이라고 하는 게 좋을 듯 하다. 232쪽. 9천원. (서울=연합뉴스) 강영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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