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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 “미셸, 나보다 인기” 롬니 “토론 실력은 금주 덕”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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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3호 11면

버락 오바마(맨 왼쪽) 대통령과 밋 롬니(맨 오른쪽) 공화당 후보가 18일(현지시간) 촌철살인 유머 대결을 펼친 앨프리드 E 스미스 기념재단 만찬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가운데는 티머시 돌란 뉴욕대교구 추기경이다. [AP=연합뉴스]

“링컨, 당신은 말만 그럴듯하게 하는 두 얼굴의 이중인격자예요.”(스티븐 더글러스)
“얼굴이 두 개라면 오늘같이 중요한 날 왜 이 못생긴 얼굴로 나타났겠습니까?”(에이브러햄 링컨)

미 대선 주자의 또 다른 경쟁력, 유머 감각

링컨과 더글러스가 1858년 상원의원 합동 선거 유세장에서 주고받은 대화다. 더글러스의 공격을 재치 있게 맞받아친 링컨의 유머 감각은 지금도 회자된다.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은 재선을 앞두고 지지율 추락을 걱정하는 참모들에게 “총 한 번 더 맞으면 되지”란 농담을 던졌다. 그는 한 해 전 존 힝클리에게 저격을 받았다. 그때 “(영화배우 시절) 영화에선 총탄을 잘 피할 수 있었는데”라는 유머를 구사해 지지율이 83%까지 올랐다.

유머 감각은 미국 정치, 특히 대선에선 후보의 내공을 평가하는 주된 기준이다. 아예 유머 감각을 대결시키는 자리도 있다. 지난 18일(현지시간) 뉴욕시 월도프 애스토리아 호텔에서 열린 앨프리드 E 스미스 기념재단 만찬이 그렇다. 스미스 전 뉴욕 주지사는 천주교도로선 처음으로 1928년 대선 후보가 됐다. 그를 기리기 위해 시작된 이 자선기금 마련 행사는 대선이 열리는 해엔 각 당 후보를 연사로 초청한다. 후보들은 참석자들의 웃음을 이끌어내는 유머 대결을 펼치는 게 관례다. 상대 후보에 대한 ‘촌철살인’ 유머부터 자기 자신까지 농담의 소재로 삼는 ‘살신성인’ 유머가 묘미다. 대선 투표일인 11월 6일까지 얼마 안 남은 상황이지만 후보들의 웃음 가득한 표정에선 여유가 묻어났다. 자신에 대한 풍자가 이어져도 박수를 보내며 여유로운 웃음으로 응수했다. 어쩌다 마주치면 카메라 앞에서 어색한 미소만 연출하고 마는 한국 대선 후보들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다.
 
“이런 만찬장엔 주로 지명운전자로 왔다”
행사 관례에 따라 연미복에 흰 나비 넥타이를 차려 입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밋 롬니 공화당 후보는 유쾌한 대결을 펼쳤다.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 등이 이 대결을 지켜봤다. 행사 진행을 맡은 앨프리드 E 스미스 4세는 “(모르몬교인) 롬니 후보를 천주교로 개종시키기 위해 불렀다”거나 “오바마 대통령도 오늘 각오해야 할 것”이라며 분위기를 띄웠다.

먼저 연단에 선 롬니 후보는 연미복과 나비 넥타이에 대한 농담으로 말문을 열었다. “선거 운동을 하다 보면 옷을 자주 갈아 입어요. 아침 행사엔 청바지, 점심 기금 마련 파티엔 정장을 입는 식이지요. 그런데 오늘 드디어 (부인) 앤과 내가 매일 집에서 입는 옷을 입으니 너무 편안하군요.” 재산이 2억5000만 달러(약 2750억원)에 달하는 갑부인 자신을 스스로 풍자 대상으로 삼은 것.

나아가 자기의 종교인 모르몬교 역시 농담의 대상으로 삼았다. “이런 만찬장에 올 땐 주로 지명운전자(귀갓길 운전을 위해 술을 안 마실 사람) 자격으로 왔었다. TV 토론 실력도 65년 (평생) 술을 안 마신 덕”이라며 모르몬교의 금주 원칙을 풍자했다. 좌중의 웃음을 유도한 그는 본격적으로 포문을 오바마 대통령에게 돌렸다. “힘든 선거 과정에서 나와 오바마 대통령이 각각 의지할 사람이 있어서 다행이다. 내겐 아름다운 아내 앤이 있고, 오바마 대통령에겐 빌 클린턴이 있다”고 꼬집었다.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클린턴 전 대통령의 연설 덕에 오바마 대통령이 힘 받은 것을 비꼰 발언이었다.

롬니 후보는 자신의 러닝메이트인 폴 라이언 부통령 후보를 위한 작은 ‘복수’도 했다. 조 바이든 부통령이 11일 벌어진 부통령 후보 간 TV토론에서 라이언 후보의 발언 중 여러 차례 소리를 내가며 웃은 것을 두고 “오늘 오바마 대통령이 조 바이든 부통령을 데리고 나오길 고대했다. 무슨 일에도 잘 웃으니까”라고 꼬집었다.
롬니 후보는 내친김에 언론에 대해 섭섭했던 속내도 농담으로 풀어냈다. 그는 “내가 여론조사에서 앞서면 언론은 ‘오바마가 뒤에서 리드하고 있다’고 쓴다. 오늘 만찬 내용 헤드라인은 ‘천주교인들에게 환영받은 오바마, 부유층과 만찬 즐긴 롬니’가 될 것”이라고 했다.
 
“결혼기념일 선물 잊는 것보다 나쁜 게 있더라”
이어 연단에 오른 오바마 대통령은 기립박수로 자신을 맞이한 청중을 향해 “어서 자리에 앉아주세요.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여러분 의자를 향해 고함을 칠 테니까요”라고 농담했다.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이스트우드가 빈 의자를 놓고 오바마 대통령을 투명인간 취급하며 희화화한 것을 꼬집은 발언이다. 만찬장엔 폭소가 터졌다. 1차 TV 토론에서 부진했던 것도 웃음의 소재로 삼았다. “2차 토론에서 저는 활기가 넘쳤습니다. 1차 토론 때 (아무 것도 안 하고) 낮잠을 기분 좋게 잤거든요.”

1차 TV 토론일이 결혼기념일이었던 걸 두곤 “결혼기념일 선물 사는 걸 잊어버리는 것보다 더 나쁜 게 있다는 것도 알게 됐다”며 패배를 인정한 뒤 한 발 더 나아가 농담의 소재로 삼는 여유를 부렸다. 부인 미셸의 인기를 두고도 “선거 운동 하러 가는 곳마다 사람들이 ‘사실 우린 미셸을 더 보고 싶었다’고 하더군요”라고 농담했다.

롬니 후보에 대한 풍자도 잊지 않았다. “오늘 뉴욕 미드타운 가게에서 쇼핑을 즐기며 좋은 시간을 보냈다”며 “하지만 (갑부인) 롬니 주지사는 가게를 통째로 사들였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22일로 예정된 마지막 3차 TV토론 주제가 외교정책인 것을 두고 롬니 후보가 최근 영국 방문에서 실언한 것도 은근히 비꼬았다. “2008년 해외 순방 당시 너무 인기가 좋았던 게 공격을 받았었는데, 롬니 후보는 그럴 일이 없었다”고 말하면서다. 롬니 후보의 원래 이름이 ‘윌러드 밋 롬니’인 것을 두고서는 “나도 가운데 이름을 쓸 수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오바마 대통령의 가운데 이름은 이라크 독재자인 사담 후세인을 연상시키는 ‘후세인’이다. 반대파들 공격 대상이 되기도 했던 이 이름을 재치 있게 농담의 소재로 삼은 것이다.

유머 대결의 하이라이트는 그러나 상대방에 대한 훈훈한 마무리 발언이었다. 롬니 후보는 연설을 마치며 “우리 대통령은 재능이 많고 훌륭한 가족을 꾸려낸 인물이다. 정치에선 상대방과 의견을 달리할 수 있지만 악의가 없어야 한다”며 “정치보다 중요한 게 인생에 많다”고 연설을 마무리해 큰 박수를 받았다. 오바마 대통령 역시 “롬니 후보는 가정적인 남자이자 애정 넘치는 아버지다. 우린 정치적 견해는 다를지 모르지만 서로 협력하며 품위를 지켜나갈 것”이라고 끝냈다. 뉴욕타임스(NYT) 등 미국 언론은 두 후보의 유머 대결이 막상막하였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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