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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군·반군 모두 아이들 총알받이 세우고 고문”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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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3호 14면

국제아동구호 NGO 세이브더칠드런(Save the Children) 창립자 에글렌타인 젭(1876∼1928·영국)은 “전쟁의 가장 큰 대가를 치르는 건 어린이들”이라는 말을 남겼다. 유혈 사태 19개월째로 접어든 시리아에서도 이 말은 유효하다. 접경국가인 레바논·요르단·이라크 등에서 난민 구호 활동 중인 세이브더칠드런은 시리아 어린이들의 증언을 토대로 한 가혹 행위 사례 보고서를 최근 발표했다.

시리아 난민 구호활동 ‘세이브더칠드런’의 미디어 담당관 애니 보드머로이

보고서에 따르면 시리아 어린이들은 정부군과 반군 양쪽으로부터 구타를 포함해 팔다리와 생식기 전기고문, 손톱 뽑기, 팔을 뒤로 묶어 천장에 매달기, 담뱃불로 지지기 등의 고문을 당한 걸로 나타났다. 상대편 공격을 막기 위해 어린이들을 ‘인간방패’로 쓰는 일도 벌어졌다. 며칠씩 굶기고 물 한 모금 못 마시게 하거나 지나가는 아이의 머리를 겨냥해 내기 사격을 하는 일도 있었다.

유엔난민기구(UNHCR)가 파악한 시리아 난민은 지난달 말 현재 25만여 명이다. 두 달여 동안 2배 넘게 증가했다. 이 중 절반 이상이 어린이다. 이들은 전쟁의 잔인함 앞에 속수무책으로 노출돼 있다. 레바논 난민촌에서 구호 활동 중인 애니 보드머로이(28·사진) 세이브더칠드런(이하 SC) 미디어 담당관을 17일 전화로 인터뷰했다. 캐나다 출신인 그는 탈(脫)정치·종교·인종 등 SC 방침에 따라 시리아 사태에 대한 구체적인 묘사나 평가는 피했다. 하지만 상황을 묻는 질문에 답하면서 그가 여러 차례 되풀이해서 사용한 ‘extreme(극단적인)’ ‘horrifying(공포스러운)’ ‘horrible(끔찍한)’ ‘very very difficult(매우 매우 힘든)’ 등의 형용사와 간간이 내쉰 한숨에서 상황의 심각성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요르단 난민캠프에 있는 한 살배기 마날. 시리아국경을 넘을 때 마날의 엄마는 발각되는 걸 피하기 위해 마날에게 수면제를 먹여 재웠다고 한다.

-현재 시리아 상황은 얼마나 심각한가. 정권 붕괴가 임박했다는 외신 보도가 나온 지도 몇 달째다.
“지금까지 사망자는 1만7000명에서 2만2000명쯤으로 추산된다. 난민은 연말까지 7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난민 중 절반 이상이 어린이다. 미처 탈출하지 못해 인도적 지원을 필요로 하는 시리아인도 250만 명에 달할 걸로 유엔은 보고 있다. 대개 폭격과 총격을 피하기 위해 밤을 틈타 간단한 소지품만 챙긴 채 걸어서 국경을 넘었다. 매일같이 난민들을 만나는데, 그들로부터 듣는 시리아 상황이 너무나 끔찍해 말이 나오지 않을 지경이다. 수업 도중 학교가 폭격을 당해 눈앞에서 친구들이 죽는 걸 본 아이를 만났는데, ‘이제 어디로 가야 할지,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면서 울더라. 무슨 말을 해줘야 할지 난감하고 안타깝기만 했다. 대체 왜 이런 유혈 사태가 일어나는지 이유도 모르겠고 어떻게 해야 끝날지도 모르겠다.”

-SC 보고서의 가혹 행위 사례는 도저히 어린이한테 했다고는 믿기 힘들다. 특히 6세 남자아이를 사흘간 굶긴 후 구타해 죽이고 시체를 짐승 다루듯 했다는 증언은 충격적이다.
“가혹 행위를 당했거나 목격한 어린이 80여 명과 그들의 가족을 대상으로 대면 인터뷰를 한 달간 실시했다. 너무나 끔찍한 내용이 많았다. 포탄을 맞은 사람들의 팔다리가 잘려 나뒹구는 걸 본 아이, 자신이 매일 다니던 학교 교실 천장에 팔을 뒤로 묶여 한 시간 넘게 매달린 아이, 열 손가락 손톱을 모두 뽑힌 아이 등이다. 직접 고문당한 경우는 악몽을 꾸거나 신경쇠약·몽유병·불면증·야뇨증·실어증 등의 증세를 보였다. 자해를 하기도 한다. 15세 아이가 극심한 충격으로 6, 7세 수준으로 퇴행 현상을 보인 경우도 있다. 축구공을 차고 놀던 아이들이 포탄 파편과 총알을 갖고 노는 게 지금 그곳의 현실이다. SC는 국제사회가 이 참상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는 생각에서 보고서를 작성했다. 싸움은 어른들이 하는데 언제나 아이들이 가장 큰 피해자가 되는 현실이 마음 아프다. 후진국일수록 아이들 피해는 더 커진다. 우리가 조사한 사례가 지금 시리아에서 벌어지는 비극에 비해 빙산의 일각이 아닐까 싶어 두렵다.”

-어느 지역에서 주로 이런 일이 일어났나.
“(반정부 세력이 강세를 보인) 데라(Dera’a)와 홈스(Homs)다. 학교를 고문센터로 쓰는 경우도 많았다. 정부군은 금요일 기도에 사람들이 많이 모이면 저항세력화할까봐 목요일엔 어김없이 폭격을 퍼붓는다.”

-아이들을 고문하는 목적은.
“마을을 공격할 때 어린이를 인질로 하면 부모들이 무력해진다. 그러니 정부군 반군 할 것 없이 아이들을 붙잡아 총알받이로 쓰거나 고문을 한다. 상대편에 협조한 마을을 응징하는 차원에서 아이들에게 가혹 행위를 하기도 한다.”

-아이들의 정신적 상처엔 어떻게 대응하나.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아이들과 시리아에서 겪은 일에 대해 대화를 나누는 것부터 시작한다. 자신이 겪은 고통을 남에게 털어놓기만 해도 고통을 더는 데 한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정말 심각한 경우엔 전문인력에게 심리치료를 받게 한다.”

-레바논에선 어떤 구호활동을 하고 있나.
“레바논에만 현재 6만2000여 명의 시리아 난민이 있다. 미등록자까지 포함하면 매일 1000명씩 늘고 있다. 요르단처럼 정식 캠프가 있는 건 아니고 천막이나 가정집, 소규모 가게 등 한 곳에 25명씩 수용하는 식으로 운영 중이다. SC는 요르단에 100명, 레바논에 75명의 봉사인력을 파견했다. 아동 친화 공간 17곳을 만들어 하루 평균 1700명의 아이들이 하루빨리 전쟁의 상처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그럴 가능성이 희박한데도,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 학교에 다닐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잃지 않는 아이들을 보면 솔직히 고통스럽다. 그래서 이곳에 간이시설을 마련해 아이들 학교로 사용하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면 밥 먹고 학교 가는 식의 일상을 회복해주는 데 중점을 뒀다. 하루아침에 사랑하는 가족과 집을 잃은 아이들의 충격은 상상을 초월한다. 웃음 잃은 아이들에게 갈 곳을 마련해줘서 정서적 안정감을 되찾도록 하는 게 일차 목표다.”

-보고서에서 한 16세 소년이 “아무도 시리아에는 신경 쓰지 않는 것 같다. 아무도 우릴 도와주지 않고 우린 그저 죽어간다”고 했다. 이들이 느끼는 고립감 이 상당한 것 같다.
“맞다. 곧 겨울이 올 텐데 난민들에 대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남의 나라 내전이라고 여겨 다들 시리아 사태에 큰 관심을 갖지 않는 것 같다. 물론 유엔도 구호에 최선을 다하고는 있지만, 상황이 워낙 심각하다보니 한계가 있다. 매일같이 정말 이래도 되는 건가 싶을 정도로 시리아 사태는 악화되고 있다. SC는 시리아 아동들을 위해 서명운동과 모금활동을 하고 있다. 그들이 ‘(국제사회가) 우릴 잊은 것 같다’고 절망하지 않도록 전 세계인들의 관심을 호소한다. 시리아 문제에 관심을 갖고 이렇게 인터뷰를 요청해 줘 정말 고맙다.”



세이브더칠드런(Save the Children) 1919년 영국의 사회운동가 에글렌타인 젭(Eglantyne Jebb)이 세운 국제아동권리기관. 현재 한국을 포함한 30개 회원국이 전 세계 120여 사업장에서 아동 인권보호를 위해 활동 중이다. 국적과 종교, 정치적 이념을 초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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