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북디자이너 로베르 마생(아래 사진)을 만나면 언제나 비주(뺨을 서로 맞대며 하는 유럽인들의 인사 방식)를 한다. 올해로 87세. 고령이지만 지난해 여름 파리 몽파르나스에 위치한 그의 집을 찾아갔을 때 그간의 작업량으로 방문한 이들을 놀라게 했다. 최근 작업한 것들이라며 20여 권의 책들을 한 침대 위에 깔아놓았다. 그 책들은 그가 몇 년 전부터 ‘티포그라피 엑스프레시브’(‘표현주의 타이포그라피’란 뜻)란 이름의 작은 출판사를 운영하면서 낸 것이었다. 스스로가 발주자가 되어 기획하고, 편집하고 디자인한 책들이었다. 물론 완성도나 편집 면에서 아쉬운 면이 없진 않다. 세월의 힘 앞에서 한때 날 선 감각은 무뎌질 수밖에 없기 때문일까. 하지만 또 그런 이유에서 고령의 그가 다채로운 주제의 책들을 만들고 있다는 행위 그 자체는 귀감의 대상이 된다.
시대를 비추는 북디자인 ⑧ 마생
마생은 파리 남서쪽에 위치한 어느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가 북디자이너로 입문하게 된 계기는 우연에 가까웠다. 막연히 문학이 좋아 발을 들여 놓은 1940년대 후반 프랑스 ‘최고의 책클럽’. 이곳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파괴된 도서관의 역할을 대신하며 자생적으로 생겨난 소규모 문학 클럽이다. 초기 마생은 이곳에서 발행하는 뉴스레터의 편집자였다. 전문 디자이너가 없었던 탓에 지면에 이미지와 활자를 배치하는 레이아웃은 그의 몫이었다. 자연스럽게 북디자인을 익히게 되었다. 그리고 마생은 제도권 디자인의 규율과 제도에 구애받지 않는 상상력 넘치는 작업으로 ‘오브제로서의 책’을 그곳에서 실현해 나갔다. 실제 그릇이 붙어 있는가 하면 과감한 활자가 이미지가 되어 표지 전면에 등장하는 등 당시 마생이 디자인한 책들은 책의 모습을 한 예술품이었다. 하지만 한편으론 작가주의에 치우친 실험이었다. 한쪽으로 완전히 기운 시소의 모습에 가까웠다. 그런데 평형을 이루고자 했던 의지였을까. 58년, 전환의 시기가 찾아왔다.
“제가 갈리마르 출판사에 입사했을 때가 58년이었어요. 하지만 책의 디자인을 담당하는 전문적인 부서는 없었습니다. 전 모든 걸 혼자 처리해야 했습니다.” 마생은 파리에서 처음으로 출판사에 아트디렉팅 시스템을 도입한 인물이 된다. 그리고 스스로가 아트디렉터가 되면서 갈리마르 출판사의 모든 출판물들을 진두지휘하기 시작했다. 문고판 ‘솔레이(Soleil)’ 시리즈부터 ‘폴리오(Folio·사진 2)’ 그리고 ‘리마쥐네르(L’Imaginaire)’까지 마생은 각 시리즈에 어울리는 컨셉트를 고안해 통일성이 있으면서도 개별성이 돋보이는 전략을 적용했다.
이후 마생은 보다 더 실험적인 북디자인 궤도에 오른다. 그것은 ‘표현주의 타이포그라피’라는 맥락에서 볼 수 있는 일련의 작업들이다. 그 첫 단추는 64년 갈리마르 출판사에서 출판된 이오네스코의 희곡작품
여러 책의 저자이기도 한 그는
갈리마르 아트디렉터직에서 손을 뗀 지도 오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