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각도로 알파벳을 비틀다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293호 31면

프랑스 북디자이너 로베르 마생(아래 사진)을 만나면 언제나 비주(뺨을 서로 맞대며 하는 유럽인들의 인사 방식)를 한다. 올해로 87세. 고령이지만 지난해 여름 파리 몽파르나스에 위치한 그의 집을 찾아갔을 때 그간의 작업량으로 방문한 이들을 놀라게 했다. 최근 작업한 것들이라며 20여 권의 책들을 한 침대 위에 깔아놓았다. 그 책들은 그가 몇 년 전부터 ‘티포그라피 엑스프레시브’(‘표현주의 타이포그라피’란 뜻)란 이름의 작은 출판사를 운영하면서 낸 것이었다. 스스로가 발주자가 되어 기획하고, 편집하고 디자인한 책들이었다. 물론 완성도나 편집 면에서 아쉬운 면이 없진 않다. 세월의 힘 앞에서 한때 날 선 감각은 무뎌질 수밖에 없기 때문일까. 하지만 또 그런 이유에서 고령의 그가 다채로운 주제의 책들을 만들고 있다는 행위 그 자체는 귀감의 대상이 된다.

시대를 비추는 북디자인 ⑧ 마생

마생은 파리 남서쪽에 위치한 어느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가 북디자이너로 입문하게 된 계기는 우연에 가까웠다. 막연히 문학이 좋아 발을 들여 놓은 1940년대 후반 프랑스 ‘최고의 책클럽’. 이곳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파괴된 도서관의 역할을 대신하며 자생적으로 생겨난 소규모 문학 클럽이다. 초기 마생은 이곳에서 발행하는 뉴스레터의 편집자였다. 전문 디자이너가 없었던 탓에 지면에 이미지와 활자를 배치하는 레이아웃은 그의 몫이었다. 자연스럽게 북디자인을 익히게 되었다. 그리고 마생은 제도권 디자인의 규율과 제도에 구애받지 않는 상상력 넘치는 작업으로 ‘오브제로서의 책’을 그곳에서 실현해 나갔다. 실제 그릇이 붙어 있는가 하면 과감한 활자가 이미지가 되어 표지 전면에 등장하는 등 당시 마생이 디자인한 책들은 책의 모습을 한 예술품이었다. 하지만 한편으론 작가주의에 치우친 실험이었다. 한쪽으로 완전히 기운 시소의 모습에 가까웠다. 그런데 평형을 이루고자 했던 의지였을까. 58년, 전환의 시기가 찾아왔다.

“제가 갈리마르 출판사에 입사했을 때가 58년이었어요. 하지만 책의 디자인을 담당하는 전문적인 부서는 없었습니다. 전 모든 걸 혼자 처리해야 했습니다.” 마생은 파리에서 처음으로 출판사에 아트디렉팅 시스템을 도입한 인물이 된다. 그리고 스스로가 아트디렉터가 되면서 갈리마르 출판사의 모든 출판물들을 진두지휘하기 시작했다. 문고판 ‘솔레이(Soleil)’ 시리즈부터 ‘폴리오(Folio·사진 2)’ 그리고 ‘리마쥐네르(L’Imaginaire)’까지 마생은 각 시리즈에 어울리는 컨셉트를 고안해 통일성이 있으면서도 개별성이 돋보이는 전략을 적용했다.

이후 마생은 보다 더 실험적인 북디자인 궤도에 오른다. 그것은 ‘표현주의 타이포그라피’라는 맥락에서 볼 수 있는 일련의 작업들이다. 그 첫 단추는 64년 갈리마르 출판사에서 출판된 이오네스코의 희곡작품 대머리 여가수(사진 1)였다. 실제 연극 ‘대머리 여가수’에 착안해 만든 이 독특한 ‘희곡’은 수십 차례에 걸쳐 연극을 감상하고 분석한 마생의 노력이 있기에 가능했다. 통상 활자로만 건조하게 기록되는 희곡집을 마생은 타이포그라피적으로 재해석함으로써 평면적인 책 안에 배우들의 목소리가 그대로 전달될 수 있는 입체적 공간을 구현시킨 것이다. 마생은 말한다. “타이포그라퍼가 독자에게 연극을 보고 있다는 느낌을 주지 않는다면 희곡집은 생명력 없는 시체에 불과할 뿐이다”라고. 그는 목소리로부터 멀어진 문자에 그 소리를 되돌려 주었고 활자들은 발화자에게로 돌아가 새롭게 태어났다. 이 작업으로 마생은 전 세계가 주목하는 북디자이너가 되었고, 대머리 여가수는 북디자인의 ‘정전(canon)’이 되었다. 마생의 표현주의 타이포그라피를 중심에 둔 실험적인 작업들은 이후 두 명의 정신착란군중 등으로 계속 이어졌다. 특히 군중에서는 콘돔을 사용해 글자를 비틀거나 늘리는 등 각양각색의 모습으로 알파벳을 왜곡시켰다. 60년대, 컴퓨터가 없었던 시절 마생이 고안한 글자 다루기였던 것이다. 그리고 지금의 ‘티포그라피 엑스프레시브’. 그것은 평생을 글자와 책에 몸 바친 마생의 마지막 남은 자존심이기도 하다.

여러 책의 저자이기도 한 그는 글자와 이미지에서 인류가 문자와 함께 존재해 왔던 시기를 종횡무진한다. 그 속에서 마생은 상자·간판·옷·필사체 등 글자가 있는 풍경 사이를 비집으며 글자를 채집해 나갔다. 그리고 이것은 ‘표현주의 타이포그라피’의 전신이 된다. “활자를 왜곡시키는 것은 저에겐 일종의 드로잉이었어요. 알파벳과 같은 경직된 체제로 보일 수 있는 것을 전 오히려 새로운 시선으로 보았던 것이죠.” 결국 ‘마생다움’이라고 일컬을 수 있는 그의 독보적인 작업과 행보는 모두 알파벳을 바라보는 새로운 각도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갈리마르 아트디렉터직에서 손을 뗀 지도 오래고, 대머리 여가수로 칭송받았던 시절도 지나간 지금. 국내 디자이너들에게 마생은 이제 잊혀진 혹은 들어본 적도 없는 그런 인물이 되어가고 있다. 하지만 내가 보는 마생은 지금 ‘티포그라피 엑스프레시브’를 통해 ‘포스트 대머리 여가수’라는 새로운 전성기를 쓰고 있다. “하루라도 책을 안 만들면 죽을 것 같다”고 고백하는 이 노장에게 책은 인생의 후반기를 비추는 따뜻한 등불이 아니고 무엇일까.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