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경계해야 할 경기부양 유혹

중앙일보

입력

경기 회복에 대한 기대가 하반기에서 연말로, 이제는 다시 내년 이후로 멀어져 가는 가운데 정부가 경기 회복 카드를 꺼내들었다.

김대중 대통령은 16일 국무회의에서 물가를 자극하지 않고 경기를 활성화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인플레를 야기치 않는 범위 내의 내수 진작' 이라고 일단 선을 긋긴 했지만 경제정책이 구조조정 주력에서 경기부양 우선으로 선회하는 조짐으로 받아들일 만한 신호로는 충분하다.

경기 활성화를 위한 정부의 어쩔 수 없는 고육책(苦肉策)이기도 하겠지만 내년 대선을 앞두고 경기 부양의 유혹에 빠져드는 게 아닌가 하는 의문도 든다.

경제가 활력을 잃어가는 마당에 적절한 경기 활성화 수단이 있다면 못 쓸 일은 없다.

그러나 문제는 작금의 경제상황은 구조조정이 여전히 난항을 겪고 있는 가운데 경기순환의 장애가 겹쳐 있어 경기 대책이 실효를 거두기 어렵다는 점이다.

기업.금융부문의 구조조정은 지지부진하고 미국.일본의 경기 침체 등 세계 경기가 좋지 않은 상황에서 경기 진작에 나서봐야 큰 기대를 하긴 어려운 시점이다.

정부가 내놓을 대책은 올해 예산을 가급적 3분기에 당겨 집행하고 건설 투자를 활성화하는 방안 등이 주내용이 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재정을 통한 수요 확대도 막대한 공적자금 수요로 이미 취약성을 노출, 한계가 있게 마련이다. 건설 경기 부양 역시 저금리 속에 오름세를 타고 있는 부동산 가격을 부추겨 물가 불안의 방아쇠를 당길 우려가 없지 않다.

수출과 투자가 장기간 맥을 못 출 경우 성장잠재력의 근본적인 훼손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현재의 경제 불안은 단순한 경기 하강보다 경제에 가로놓인 불확실성이 증대되는 현실에서 연유한다는 것이다.

그러자면 노력도 당연히 정책의 혼선을 최소화하면서 불확실성의 제거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구조조정만 해도 요즘 정부는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하루 빨리 대우자동차.현대.서울은행 등 거대 부실 문제들을 다잡아 해결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동시에 과감히 규제를 풀어 기업환경의 개선이 이루어져야 한다.

정치권도 정쟁에 앞서 기업 구조조정특별법 등 민생.경제법안들을 어서 처리하는 게 온당한 자세며 동시에 정치가 언제까지 경제의 발목을 잡느냐는 질책을 안 듣는 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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