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들 몰려오지만 싱가포르는 고민 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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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 라인하트, 에드아르도 사베린, 리처드 챈슬러…. 최근 몇 년 새 싱가포르로 국적이나 거주지를 옮긴 대표적인 수퍼리치들이다. 글로벌 자산시장에서 수퍼리치는 빚을 뺀 자산이 100만 달러(약 11억원) 이상인 부자를 말한다.

 라인하트는 호주의 광산 재벌이다. 재산은 291억 달러(약 32조3000억원) 정도다. 최근 그는 4700만 달러를 들여 싱가포르 해변가 호화 주택을 사들였다. 전 가족이 이사하기 위해서다. 사베린은 페이스북의 공동 창업자다. 재산이 22억 달러(약 2조4400억원) 정도 된다. 그는 올해 싱가포르 국적을 취득했다. 챈슬러는 뉴질랜드 출신인 부동산 재벌이다. 재산은 29억 달러(약 3조3000억원)다. 그도 가족과 함께 싱가포르에 정착했다.

 수퍼리치들은 앞으로도 계속 싱가포르행 비행기에 오를 듯하다. 스위스계 금융그룹인 크레디트스위스는 “싱가포르의 백만장자가 현재 15만6000명에서 5년 뒤인 2017년엔 24만9000명으로 60% 늘어날 전망”이라고 밝혔다.

 왜 부자들은 싱가포르를 좋아할까. 깔끔한 환경과 믿을 만한 치안 등도 있지만 무엇보다 합법적인 차명계좌와 낮은 세율 때문이다. 싱가포르의 최고 소득세율은 20%에 불과하다. 자본이득세는 존재하지도 않는다.

 싱가포르 이민을 결행하진 못해도 스위스 비밀계좌에서 빼내 싱가포르 은행으로 옮기는 부자도 많다. 독일-스위스 금융정보 교환 협정이 내년부터 발효돼서다. 스위스 은행의 비밀 전통이 사실상 막을 내리는 셈이다.

 그러나 정작 싱가포르 정부는 밀려드는 수퍼리치가 달갑지만은 않다. 싱가포르가 조세피난처나 돈세탁 천국으로 지목되면 서방 국가들의 감시와 제재를 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9·11테러 이후 강화된 미국 애국법은 돈세탁 혐의가 있는 해외 은행과 자국 은행의 거래를 금지하고 있다. 싱가포르 은행들이 이 법에 걸리면 주력 산업인 금융이 타격받을 수밖에 없다. 로이터통신은 “싱가포르 정부가 최근 자금 흐름을 더욱 세밀하게 살피고 있다”며 “미국 등과 금융정보 교환 협정을 맺기도 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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