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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공동체를 찾아서] 1. 한국 디아코니아 자매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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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물질적 풍요의 뒤를 들여다보면 인간성 상실과 환경파괴, 이기주의 등 바람직하지 못한 특성이 두드러진다. 이 세상에 빛과 소금.목탁이 되어야 할 종교계 또한 세속적인 가치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듯하다.

이에 대한 반성으로 전개되고 있는 것이 공동체 운동이다. 공동체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생태적.영성적인 성격을 어느 정도씩 띠고 있다. 이 중 영성적인 성격이 강한 공동체를 찾아 우리 사회가 나아갈 길을 찾아본다.

충남 천안시 병천면 은석산 기슭에 자리잡은 '한국 디아코니아 자매회'의 모원(母院)엔 6명의 '언님'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삶에 가까이 다가가려 애쓰고 있다. 진한 남색 제복에 등잔을 새긴 은색 메달을 목에 건 모습이 천주교의 수녀를 많이 닮았지만, 이들은 실은 개신교에서 유일한 여성 수도회의 회원들이다.

물론 초교파임을 강조한다. '언님'이라는 호칭의 '언'은 한자로 치면 어질 인(仁)에 해당하는 순수 우리말이다. 그러니까 '어진 님'이라는 뜻이다.

지난해 12월 30일 그곳 앞뜰엔 햇살이 유난히 따스했다. 여성 6명이 감당하기엔 너무 외지고 규모가 크다 싶었다. 절로 영성이 깃들 분위기다. 언님들에게 이것 저것 물어도 '별난 삶이 아닌데…''미화되면 안 되는데…'라는 식의 반응만 돌아왔다. 언님들을 만나는 약속을 잡는데 2주일이 걸린 배경을 알만했다.

이곳의 삶은 대체 어떨까. 노종숙 언님을 붙잡았다.

"다를 게 없습니다. 영성과 삶을 결합한 것이죠. 지금은 겨울이라서 차분한 편입니다. 여름이면 밭일을 하느라 바빠요. 적어도 먹는 것만은 자급자족이 원칙입니다. 이곳으로 피정 오는 사람이 늘어나면 장을 봐야 하지만…."

한국 디아코니아 자매회엔 수녀회와 달리 권위가 주어진 지도자가 없다. 우리 개신교 안에 수도회 전통이 없는 것도 이들을 힘들게 만드는 요소다. "사회 경험이 제각각이잖아요. 대체로 고집이 센 편입니다. 그런 구성원들이 한 지붕 밑에서 마음을 모으는 일이 생각만큼 쉽지 않아요."

노종숙 언님은 그것이 바로 공동체의 수행으로 통한다고 강조했다. "부닥치는 그 사람이 거울로 보입니다. 갈등을 빚게 되면 내 안에 습(習)으로 굳은 관념을 찬찬히 들여다 보게 됩니다.

말도 조심하게 되고, 말을 하더라도 내 마음의 화가 한풀 꺾인 뒤 하게 됩니다." "그러면 회원이 늘어나는 게 싫겠습니다"라고 묻자 노 언님은 "나를 비춰볼 거울이 많아지는 건데요"라며 웃었다.

자매회가 탄생하게 된 사연만으로도 어려움이 잡힌다. 고(故)안병무 박사(전 한신대 교수)가 1979년 당시 산업화 사회에서 예수의 제자로 삶을 살아가는데 한계를 느낀 여자 제자들에게 공동체를 제안한 것이 계기였다.

안박사의 제자 4명은 몇 개월간 공동생활을 한 결과 80년에 거주 공간만아니라 일과 삶을 연결할 터전이 필요하다고 결론내렸다.

이때 안박사의 절친한 친구로 목포에서 의료봉사 활동을 하던 여성숙 선생이 전남 무안군의 한산촌 결핵 요양소를 흔쾌히 이들에게 내놓았다. 그리하여 자매회가 태어났다. 5명이 살면서 목포 지역에서 폭넓은 활동을 펴는 한산촌이 지금은 자매회의 분원이고 98년에 마련한 천안의 '영성과 평화의 집'이 모원이다.

디아코니아는'시중들다'라는 의미의 희랍어 '디아코내인'에서 나온 말로 섬김이라는 뜻이다. 1836년 독일 라인강변의 카이저져스베르트 지방에서 시작되었다. 산업의 발달로 도시로 몰려든 청소년과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사회봉사가 목적이었다.

자매회에 지원하려면 35세 미만으로 고등학교 졸업 학력에 목사 추천서를 갖추면 된다. 일단 들어오면 제복을 입지 않은 채 6개월간 지원기를 갖는다.

그후 언님들과 지원자가 다 같이 동의하면 허원예배를 올린다. 그리고 나서 제복을 입고 3년 간 살림살이와 기도를 더불어 하면서 공동체 생활에 깊숙이 들어간다. 그리고도 또다시 2년이 지나서, 그러니까 총 5년 6개월을 생활한 뒤 종신허원을 한다.

정명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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