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신용평가사들 지나친 상향조정 논란

중앙일보

입력

국내 신용평가기관들이 기업들의 신용등급을 잇따라 상향조정하면서 '상향조정 떨이'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침체에 빠진 회사채 시장과 최근의 경기 위축 상황을 감안할 때 신용등급을 지나치게 올리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이는 미국의 무디스와 S&P가 1997년부터 기업들의 신용등급을 꾸준히 떨어뜨려 오는 흐름과는 뚜렷하게 대비된다.

신용평가업계에 따르면 올 들어 신용등급(회사채 기준)이 상향조정된 기업은 98개사에 달하는 반면 신용등급이 떨어진 기업은 39개사에 지나지 않는다.

신용평가기관의 전체 등급조정에서 상향이 차지하는 비율은 외환위기 무렵을 바닥으로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특히 경기가 하향곡선을 긋기 시작한 지난해와 경기 침체가 본격화한 올해에 신용등급이 오른 회사는 하향조정된 회사보다 배 이상 많다.

◇ 봇물 이룬 신용등급 올리기=기업들에 대한 신용등급 상향조정은 지난 99년 정보기술(IT) 열풍으로 경기가 회복되면서 봇물을 이루기 시작했다.

그러나 경기가 정점을 치고 다시 하락세로 치달아도 신용등급 올리기 열풍은 식을 줄 모르고 있다.

신용평가 건수와 평가수수료에서 업계 1위를 차지하고 있는 한국기업평가의 경우 올 들어 6월까지 상향기업 대 하향기업수의 비율이 2.92대 1에 이른다.

시장점유율이 2.3위인 한국신용정보와 한국신용평가도 이 비율이 각각 2.18과 2.56을 기록하고 있다.

반면 세계적인 신용평가기관인 무디스의 경우 올 1분기의 신용등급 상향조정 대 하향조정 기업 비율이 0.29 대 1로 지난 91년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을 나타내고 있다.

이에 대해 한 신용평가기관의 고위 관계자는 "미국은 IT기업에 집중적으로 신용등급 하향 조정이 이뤄졌다" 며 "IT산업 비중이 상대적으로 낮은 국내 업계를 미국과 같은 잣대로 평가하는 것은 무리" 라고 주장했다.

경기는 침체하고 있지만 기업 구조조정으로 재무구조가 좋아지는 기업들이 많아 신용등급을 올렸을 뿐이라는 것이다.

◇ '신용등급 못 믿겠다'=증권업계와 시장의 반응은 다르다.

A증권사 채권분석팀장은 "요즘 회사채 신용등급보다 시장 수익률이 높게 나타나는 금리역전 현상이 종종 나타나고 있다" 면서 "신용등급 상향조정을 해당사의 펀더멘탈 개선으로 여기는 경우는 거의 없다" 고 말했다.

신용등급 조정과 시장 흐름이 따로 논다는 지적이다.

최근에는 한화석화.대한항공의 신용등급이 오르면서 BBB급 신용등급을 받았던 30대 기업들이 대거 신용등급 재조정을 신청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증시 관계자는 "외환위기 직후 엄격했던 신용평가회사들이 최근 느슨해지는 조짐" 이라며 "코스닥 등록을 위한 기업공개(IPO)를 앞두고 신용평가회사들이 실적 쌓기 위한 것일 수도 있다" 고 주장했다.

김용석 기자 caf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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