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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 특허전쟁 이후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292호 31면

1952년 도쿄통신공업의 이부카 마사루(井深大) 사장이 미국을 방문해 막 세상에 나온 트랜지스터 기술을 구경했다. 그러곤 다음 해에 2만5000달러에 이 기술을 샀다. ‘벨 전화연구소’는 일본의 작은 기업이 도대체 어디에 이 기술을 사용하려는지 궁금해 물었다. “트랜지스터 라디오를 만들려고 한다.” 그러자 연구소 기술자들이 만류했다. “트랜지스터는 라디오에 필요한 고주파에 사용하기 어렵다. 다른 건 몰라도 라디오에만은 절대 적용하지 말라.” 2년 후 이부카 사장은 트랜지스터 라디오를 만들어내 57년부터 미국으로 수출했다. 그리고 회사 이름을 ‘소니’로 바꾸었다. 소니는 64년 미국의 텍사스 인스투르먼트(TI)사로부터 반도체 IC 기본 특허를 도입해 TI 같은 미국 선발업체들을 제치고 반도체 메모리시장을 석권했다.

83년 미국 마이크론사의 설계와 일본 샤프사의 공정기술을 도입한 삼성이 이 시장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256K D램을 양산하며 적자에 허덕이던 87년께 TI로부터 청천벽력 같은 한 장의 편지가 배달됐다. 자사 특허를 침해했으니 협상을 하든지 수억 달러의 소송에 임하라는 내용이었다. 사업 초창기에 특허를 잘 몰랐던 삼성은 급히 미국 특허전문회사를 동원해 유효 특허들을 구입해 맞대응하는 전략을 펼쳤다. 결국 TI와 5분의 1 수준으로 로열티 협상이 타결됐다. 그로부터 두 회사의 운명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TI는 특허협상으로 돈을 벌었지만 메모리사업은 서서히 포기해야 했다. 반면 삼성은 도약 단계를 맞았다. 자체적으로 특허출원체제를 구비하고 그룹 차원의 특허 대응 조직과 체계를 완성했다. 초기에 이런 특허협상을 겪어 오히려 로열티 부문에서 상당한 득을 보았다고 한다.

타사로부터의 특허제소 부담을 털어낸 삼성은 설계 경쟁력에 전력을 쏟아 지난 20년간 반도체 메모리 시장에서 부동의 1위를 놓치지 않았다. 선발업체들의 특허제소가 삼성의 기술적 도약을 촉진했다면 선진국의 반덤핑 제소는 삼성의 원가 경쟁력을 다져 놓았다. 전자산업은 ‘창조적 기술’과 ‘수요 확대’의 조화로 성장하는 분야다. 소니와 마쓰시타가 아주 훌륭한 예다.

요즘 삼성과 애플 간에 스마트폰 특허전쟁이 한창이다. 지는 쪽은 회사 문을 닫아야 하지 아닐까 걱정하겠지만 과거 경험으론 ‘힘겨루기’로 끝나는 사례가 많다. 특히 세계 곳곳에서 여러 재판이 동시에 진행되는 특허전쟁에서는 일방적인 승리를 거두기 힘들다. 이런 와중에서도 양사는 챙길 수 있는 것을 다 챙긴다. 삼성만 해도 이번에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부수입을 얻어 세계 브랜드 랭킹이 9위로 치솟았다. 또한 스마트폰의 영업이익은 애플에 뒤지지만 스마트폰시장의 절대 강자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렇다면 특허전쟁 이후의 미래는? 삼성보다 애플 쪽이 더 우울하다고 전문가들은 내다본다. 스티브 잡스의 사망 이후 애플의 시가총액은 두 배로 뛰었지만 애플의 장래를 장밋빛으로 보는 전문가는 드물다. 양사의 미래를 결정하는 변수는 역시 핵심 부품 기술력, 원가 경쟁력, 감성적 디자인이 될 것이다.

핵심 부품의 ‘내재화’를 이룬 삼성이 유리한 고지를 차지할 수밖에 없다. 애플이 이를 모를 리 없다. 애플이 이번 특허전쟁에서 삼성의 목 죄기에 안달하는 이유도 거꾸로 보면 ‘삼성 길들이기’의 필요성이 그만큼 절실하기 때문일 것이다. 더불어 삼성의 핵심 부품을 장기적으로 확보하기 위한 전략일 수도 있다. 삼성으로선 특허전쟁과 관계없이 지난 20여 년간 스마트폰 다음의 차세대 신사업 분야를 개척하지 못한 것이 큰 부담이다. 삼성이 신사업을 아직도 찾지 못한 이유는 아마도 내부의 ‘기업 휴브리스(hubris)’가 있었던 것은 아닌가 싶다. 삼성 최대의 적은 자만심일 것이다.



김재명 부산 출생. 중앙고성균관대 정외과 졸업. 1978년 삼성그룹에 입사해 삼성전자 등에서 일했다. 저서로 『광화문 징검다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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