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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골목길 들어서면 … 걸음마다 풍경이 변하고, 추억이 말 걸어 옵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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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면

천안시 중앙동. 낡은 담장과 좁은 골목길이 환하게 바뀌었다. 허름했던 골목길에 벽화가 그려지면서 옛 추억을 재생시키고 있다. 어린 시절 세상의 전부처럼 느껴졌던 골목길과 친구들을 만나보고 싶다면 ‘추억의 미나릿길’로 가보자. 함께 뛰어 놀던 친구들이 골목 어귀에서 금방이라도 뛰어나올 듯하다.

천안시 중앙동에 조성된 미나릿길, 골목길을 따라 예쁘게 그려진 벽화들이 눈길을 끈다. 엄마와 산책 나온 아이가 벽화를 보며 즐거워 하고 있다. [사진= 조영회 기자]

‘추억의 미나릿길’은 조성된 지 약 한 달 남짓이지만 조금씩 입소문을 타고 천안시민뿐 아니라 전국에서 관광객들이 찾아오는 명소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미나릿길 골목여행은 중앙동 주민자치센터 뒤편 남산목공소 옆 골목 미나릿길 11-2번지부터 시작된다. 붉은 사루비아 꽃과 노란 황국이 심어진 돌담 옆을 돌면 ‘벽화골목 출발’이라는 글귀가 씌여진 황톳길을 만난다. 한걸음씩 뗄 때마다 달라지는 풍경을 감상하며 추억 속으로 골목여행을 떠나게 된다.

봄부터 겨울에 이르는 사계의 산수화가 화려하게 그려진 첫 번째 골목을 지나 ‘중앙18동 2반장’집 하늘색 대문을 지나면 이곳을 찾는 이들에게 가장 인기가 있는 골목길이 나온다. 미나릿길에 그려진 총 8점의 트릭아트(Trick Art) 중 하나인 하얀 눈과 빙하로 둘러싸인 북극의 풍경이다. 빙하 위를 조심스레 걸으며 익살스러운 표정의 펭귄과 악수를 나누거나 커다랗게 입을 벌리고 입는 백곰에게 물고기를 먹이는 장면을 연출하며 사진을 찍어보자. 트릭아트 벽화 아래엔 발자국이 그려진 포토존이 있어 벽화를 배경으로 실감나는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배려했다. 갈라진 담벼락은 나팔꽃 담쟁이로, 흉물스럽게 서 있던 전봇대는 힘차게 승천하는 용의 모습으로 변신해 생동감이 넘친다.

오래된 골목길은 이야기보따리가 되어 끊임없이 이야기를 풀어낸다. 소독차가 지나갈 때면 하얀 소독 연기를 따라 달음질을 하던 아이들의 표정이 익살스럽다. 고무신을 벗어 양손에 쥐고 달리다가 ‘꽈당’ 넘어져 우는 아이의 모습이 기억 속에 생생하다. 공기놀이와 닭싸움을 하는 아이들의 표정은 천진난만하게 다가온다. 아이스케키를 파는 아저씨, 울릉도 호박엿 장수의 리어카에서는 쨍그랑 엿장수의 가위질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모두가 아련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익숙한 골목길 풍경이다.

트릭아트작품과 함께 사진을 찍으면 그림 속으로 들어간 듯 재미있는 장면을 연출할 수 있다.

벽화를 감상하며 걷다 보면 막다른 골목이 나오거나 길이 나누어지는 지점에 어김없이 번호와 방향표시가 되어있는 것을 볼 수 있다. 800m구간 106개 벽면에 그려진 벽화는 테마별로 1번부터 17번까지 번호가 매겨져 있다. 느긋한 마음으로 순서대로 관람하다 보면 220점의 그림을 모두 볼 수 있다. 영원한 사랑을 약속하며 자물쇠를 걸 수 있는 커다란 하트 철망도 벽화거리의 볼거리다. ‘어제와 오늘’을 알리는 담장에는 칠이 벗겨지고 남루한 옛 골목에서 벽화 작업을 거쳐 변화되는 과정을 사진으로 만날 수 있다. 벽화를 배경으로 사진을 담는 사람들의 표정은 절로 웃음을 자아낸다.

냄새 나고 무너졌던 골목길이 새로운 모습으로 태어나자 가장 좋아하는 사람들은 중앙동 지역민들이다. 갑자기 늘어난 관광객들로 귀찮을 법도 한데 주거 기능이 저하됐던 동네에 사람들이 찾아오고 북적거리니 ‘사람 사는 맛이 난다’며 오히려 반기고 있다.

벽화그리기 사업이 진행되던 한 달여의 작업기간 중에는 폭염에 장마까지 겹쳐 어려운 고비가 많았다. 대학교에서 미술·디자인을 전공한 21명의 대학생들이 참여했고 주민자치센터 직원들도 휴가를 반납하고 도왔다. 무엇보다 통장협의회를 비롯한 8개 지역단체회원들과 주민들의 도움이 있어 가능했던 일이다.

김성래 중앙동 동장은 “추억의 미나릿길은 벽화골목은 지역 활성화의 일환으로 조성된 거리다. 낙후된 구도심의 이미지에서 예술도시로 거듭날 수 있도록 발전시킬 계획”이라며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하기 때문에 내년에는 재미있는 그림을 더 많이 늘릴 예정”이라고 말했다.

김 동장은 이어 “옛 골목길을 재현하기 위해 바닥에 황토를 깔았다. 전국적으로 관람시간이 한 시간여가 걸리는 벽화거리는 이 곳 미나릿길이 유일하다. 가까운 재래시장인 중앙·천일시장과 연계해 문화와 관광의 추억을 담아가는 관광명소가 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홍정선 객원기자

◆ 트릭아트(Trick Art)=평면의 2차원 그림에서 3차원과 같은 입체감을 느낄 수 있도록 한 착시미술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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