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채 신화' 만든 캘러웨이 별세

중앙일보

입력

캘러웨이 드라이버 한 번 휘둘러보지 않은 골퍼가 있을까. 바로 그 골프채를 만든 엘리 리브즈 캘러웨이가 6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란초 산타페의 자택에서 사망했다. 82세.

지난 4월까지 캘러웨이사 회장으로 정력적으로 활동하던 그는 두달 전 담낭 절제수술을 받은 뒤 췌장에 암세포가 발견돼 치료를 받던 중 병세가 악화돼 숨졌다.

조지아주 라 그레인지에서 태어난 캘러웨이는 65세에 뒤늦게 골프채 제조업에 뛰어들어 불과 10년도 안돼 지구촌을 평정했다. 미국 대통령에서 한국과 일본의 주말골퍼에 이르기까지 캘러웨이 상표는 골프채의 대명사로 인식됐다.

1984년 40만달러를 들여 '히커리 스틱' 이란 작은 골프채 제작사를 매입한 것이 캘러웨이사의 시작이었다. 이후 현재까지 이 회사는 80억달러(약 10조4천억원)어치가 넘는 골프채를 팔았다.

특히 1차 세계대전에서 사용된 대포의 이름을 딴 '빅 버사' 드라이버를 92년 출시하면서 크게 성장하기 시작했다.

재질이 감나무였던 드라이버 헤드에 금속을 사용, 기존 것에 비해 용적은 훨씬 크지만 가벼워진 '빅 버사' 에 이어 '그레이트 빅 버사' '빅이스트 빅 버사' 등을 잇따라 내놓아 매년 1억달러 이상의 매출을 올렸다.

캘러웨이는 최근 자기 이름의 머리글자를 딴 'ERC 드라이버' 를 개발했으나 미국골프협회(USGA)에서 '지나치게 멀리 나간다' 는 이유로 공식 프로대회 사용금지 처분을 받아 화제를 낳기도 했다.

"소비자를 바보로 여기지 말라" 는 게 그의 경영철학이었다.

'누구나 쉽게, 보다 멀리' 를 드라이버 제작의 원칙으로 삼아 기술을 혁신하고 마케팅 전략을 폈다.

캘러웨이는 에모리대를 졸업하고 육군에 입대해 조달본부 고위직을 지낸 뒤 섬유회사 사장과 포도주회사 사장 등으로 변신, 손대는 사업마다 성공을 거두었으며 마지막으로 '캘러웨이 신화' 를 이룩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