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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희 대기자의 투데이] 북핵, 일괄 타결뿐이다

중앙일보

입력

맞춤형 봉쇄로 북한을 굴복시킨다? 부시 정부의 관측기구인지는 몰라도 이것은 아직 미국 언론들의 추측일 뿐이다. 미국이 성공을 확신하고 북한 봉쇄를 단행할 리가 없다. 중국과 러시아가 동참하지 않는 북한 봉쇄는 성공은 고사하고 성사조차 될 수가 없다. 봉쇄정책은 양날의 칼일 때가 많다.

유럽대륙에서 승승장구하던 나폴레옹은 1805년 트라팔가르 해전에서 영국 해군에 대패한 뒤 유명한 대륙봉쇄를 단행했다. 유럽대륙과 영국의 모든 경제관계를 차단하는 조치다.

그러나 농업국가 프랑스는 유럽대륙의 다른 나라들의 농산품을 사주고 그들에게 값싼 공산품을 공급하던 영국의 역할을 대신할 수 없었다. 1811년 러시아가 대륙봉쇄령을 무시하고 영국과 통상관계를 재개하자 나폴레옹은 이듬해 러시아를 침공했다. 그것은 바로 그의 몰락의 첫 걸음이었다.

1950년대 말 친미정권을 몰아내고 혁명에 성공한 쿠바의 카스트로는 미국인들의 방대한 사탕수수밭과 광산과 석유시설을 국유화했다. 미국은 경제제재로 쿠바를 응징했다.

쿠바는 1961년 마르크스-레닌주의 지지를 선언하고 쿠바혁명의 성격을 사회주의혁명으로 규정했다. 결과적으로 미국은 자신의 앞마당 같은 카리브해 연안에 눈밑의 혹 같은 친소련 사회주의 국가를 만들어낸 것이다.

*** 실패확률 높은 봉쇄정책

1979년 호메이니 치하의 이란에서 학생들이 미국대사관에 난입해 미국 외교관을 포함한 직원 66명을 인질로 만들었다. 미국은 이란 제재안을 유엔 안보리에 상정했지만 소련의 거부권으로 부결됐다.

미국은 서유럽국가들과 동맹국들을 각개 설득해 이란에 경제제재를 실시했지만 미국 인질들이 석방된 것은 1980년 이란.이라크전쟁이 발발해 이란 스스로가 경제제재 아래 전쟁을 수행할 수 없다고 판단한 뒤다.

물론 성공사례도 있다.

제1차 세계대전 때 영국이 독일을 상대로 실시한 경제봉쇄는 식량과 사료의 3분의 1을 수입에 의존하는 독일에 식량폭동을 촉발해 전쟁수행 능력을 약화시켰다. 원료 부족으로 독일의 공업생산력이 떨어지고 그것은 군사면의 약체화로 이어졌다.

스탈린의 소련은 1948년 수정주의 노선을 선언한 티토의 유고를 경제제재로 응징했다. 단기적 효과는 없었지만 1955년 티토가 흐루시초프의 소련과 화해하는 장기적인 효과는 있었다는 평가다.

미국이 구상 중이라는 북한 봉쇄도 그 효과에 대한 평가는 단기적인 것과 장기적인 것으로 다르게 나올 수 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한국의 여론과 김대중(金大中).노무현(盧武鉉)정부가 반대하고 중국과 러시아가 참가하지 않을 게 뻔한 북한 봉쇄를 왈가왈부하기보다는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바라는 모든 한국인이 한 목소리로 미국에 북한과의 대화를 촉구할 때다.

두 개의 대전제에서 출발해야 한다. 북한의 핵무기 개발과 북한 핵시설에 대한 미국의 선제공격을 용납하지 않는다는 절체절명의 대전제다.

핵위기는 두 개의 단계로 돼 있다. 당장 북한의 핵시설 재가동을 저지하는 문제가 있고, 그 다음에 북한의 핵개발 프로그램 자체를 포기시키는 문제가 있다. 핵시설 재가동 문제는 미국의 중유 제공 중단과 직접 관계가 있다. 미국은 북한과 무조건 대화를 재개해 중유공급 재개를 조건으로 북한이 핵시설 재가동을 위해 취한 조치를 백지화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 핵확산 저지에 집중해야

미국의 체면문제가 있겠지만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이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의 평화,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핵확산 저지라는 대의(大義)를 위해 한발 물러선다면 오히려 미국은 국제사회의 존경을 받을 것이다. 자존심 싸움에서는 약자보다는 강자가 양보하는 것이 현실적이다.

핵문제의 해결방법은 북한이 말하는 일괄타결, 부시가 말하는 대담한 접근뿐이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 미국의 국교정상화와 평화협정을 한꺼번에 테이블에 올려놓고 협상하는 것이다.

북한은 미국이 핵.미사일 문제만 해결하려 한다고 의심하고, 미국은 북한이 핵프로그램을 버리지 않고 북.미관계 정상화와 체제안전의 보장만 받으려 한다고 의심한다. 그래서 방법은 일괄타결뿐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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