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하반기 경기 판단 유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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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하반기 경제운용 방향은 새로운 일을 벌이기보다 그동안 해온 일을 다지는 쪽이다.

추가적인 경기부양책 없이 제한적인 경기조절 정책 기조를 유지하고 내수를 살릴 방안을 찾았다.

부진한 설비투자와 수출을 자극하기 위해 단기간에 금리나 환율에 손을 대는 응급처방을 쓰지 않고, 개별 산업에 대한 지원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경쟁력을 키우자는 것이다.

나머지는 지금까지 추진해온
▶상시구조조정 시스템의 구축
▶정보기술(IT) 생명공학(BT)산업 지원
▶외국 부품소재 기업 유치
▶기업규제 완화 현장점검 등을 계속하기로 재확인했다.

전문가들은 성장률을 1%포인트 넘게 낮추면서 물가관리 목표는 조금 높이고 실업률을 3%대로 유지하기로 한 거시정책 목표의 실현가능성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특히 수출.투자촉진책이 내세울 게 없다고 지적했다.

◇ 천수답 경제=정부는 미국과 일본 등 세계 경제와 반도체 경기가 회복되지 않는 한 국내 경기도 활기를 되찾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있다.

세계 경제가 하반기 중 완만한 회복세를 보일 것으로 전망하면서도 그 시기나 폭에 대해서는 자신이 없어 한다. 정부가 하반기 경제운용 방향을 짜면서 경기에 대한 판단을 유보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정부는 그래도 내수가 살아날 조짐을 보이는데 주목하고 있다. 기업경기전망지수(BSI)가 100을 넘었고 소비자기대지수(CSI)도 다섯달 연속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도.소매 판매나 건설수주도 폭은 작지만 늘어나는 추세다.

그러나 5월 산업생산 증가율이 4월의 절반 수준으로 낮아졌고 설비투자와 수출의 부진이 이어지는 점에 대해선 뾰족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 투자.수출 촉진과 내수 살리기=산업은행과 기업은행이 최고 30억달러의 외자를 들여와 기업에 빌려주도록 하는 등 금융.세제 지원을 계속한다.

정부는 금융.세제 지원이 효과를 보려면 기업의 투자마인드를 살려야 한다고 보고 규제완화를 지속적으로 추진하기로 했다.

정부는 또 세계 경제여건이 나아지기만 기다릴 순 없다고 보고 급한대로 내수 쪽으로 눈을 돌렸다.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에도 내수를 중심으로 경제가 활기를 되찾은 뒤 미국 경제 활황의 과실을 땄던 점을 상기시키는 대목이다. 정부는 내수를 북돋우기 위해 제조업에 비해 금융.세제상 불이익과 구제가 많은 서비스산업에 대한 규제를 풀기로 했다.

◇ 미흡한 점=삼성경제연구소 홍순영 경제동향실장은 "자금 여유가 있는 기업도 투자를 안한다" 면서 "자금이나 세제 지원이 아닌 실제로 투자할 만한 사업, 예컨대 대규모 공공 프로젝트나 새로운 대형 사업을 시작해 기업의 투자를 유도해야 한다" 고 주장했다.

IT.BT.나노산업 지원과 관련, 정부는 이미 발표한 것을 다시 열거했다. 그러나 조금씩 여러 곳에 투자하기보다 전망이 밝은 차세대 업종에 집중적으로 투자할 필요가 있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외국인 투자를 늘리기 위해 외국인 전용단지를 넓히기로 했지만, 정작 외국인들이 걱정하는 노사분규에 대한 정부의 분명한 대책은 빠졌다.

대우자동차.현대투신.서울은행 매각문제 등 경제의 불확실성을 증대시키는 현안에 대한 보다 분명한 정부 입장도 경제운용 계획에 없다.

또 국회에서 언론사 세무조사에 대한 여야의 정치 공방이 이어지면서 구조조정촉진법, 조세특례제한법, 금융이용자보호에 관련 법률 등 민생.개혁 법안이 표류하는 점도 경제의 불확실성을 키우는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지적이다.

송상훈.이상렬 기자 mode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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