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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냐,시민축제냐.헷갈리누나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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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1호 21면

뉴욕, 런던 지나 밀라노 찍고 파리까지. 세계 4대 패션 도시에서 열리는 2013년 봄·여름 패션위크가 이번 주로 막을 내렸다. 패션위크는 뉴스가 넘치는 행사다. 연예인들이 한껏 멋을 낸 모습, 컬렉션의 컨셉트에 맞춰 꾸며진 무대, 모델이 등장할 때마다 리듬감 있게 터지는 카메라 플래시 세례까지 모든 것이 볼거리, 얘깃거리가 된다. 자연 전 세계 기자와 바이어들이 몰려다닌다. 하지만 미디어와 업계가 이들 4대 패션 도시를 모두 주목하는 이유는 도시마다 ‘색깔’이 뚜렷하기 때문이다. 뉴욕은 당장에라도 거리에 입고 나갈 수 있는 대중적이고 실용적인 브랜드를, 영국은 다소 실험적인 신진들을 팍팍 밀어주는 게 역력하다. 또 밀라노는 ‘명품’이라는 말로 치환되는 장인정신의 이미지를, 파리는 가장 정교하면서도 예술적인 디자이너의 감성을 과시한다.

스타일#: 오락가락 ‘서울패션위크’

지난해 4월 서울 패션위크 개최 당시 주최 측인 서울시로부터 향후 서울 패션위크의 컨셉트에 대해 명확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던 것은 반가웠다. 일단 해외 수주와 홍보를 목적으로 하는 컬렉션 본연의 취지를 살리겠다는 목표가 확실했다. 디자이너들의 ‘작품 발표회’ 수준을 넘어 ‘비즈니스의 장’을 만드는 데 주력하겠다는 얘기였다.
또 런던처럼 참신한 ‘크리에이터’를 키우는 컬렉션으로 방향을 잡겠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패션 테이크오프(take-off·이륙)’ 부문의 신설을 내세웠다. ‘패션 테이크오프’는 10년차 이상 디자이너들의 무대인 ‘서울 컬렉션’과 5년차 미만 신인 디자이너들이 참여해 온 ‘제너레이션 넥스트’ 사이에 있는 중간 단계다. 런던 패션위크의 ‘패션 포워드(Fashion Forward)’를 벤치마킹한 것으로, 글로벌 디자이너를 육성하는 ‘비즈니스 중심 바잉 쇼’라는 긴 설명이 이어졌다.

결과? 괜찮았다. 실적은 목표를 달성했다. ‘패션쇼가 아닌 수주 쇼’라는 일부의 비아냥을 들을 정도였다. 당시 현장에서 만난 바이어들은 60개 가까운 쇼 중에서 아예 ‘테이크오프’ 부문만 집중 공략하기도 했다. “독창적이지만 실용성을 적절히 갖췄다”거나 “상업적이면서도 실험적인 양면이 적절히 섞여 있다”는 그들의 호평은 현실과 이상을 적절히 섞을 줄 아는 ‘중고 신참’들의 장점을 제대로 꿰뚫은 것이었다. 이를 통해 이승희·김선호·최지형 등 디자이너가 새롭게 조명되기도 했다.

하지만 여기까지다. 서울 패션위크의 ‘색깔’은 1년 반 만에 또 달라지는 분위기다. 이달 22일부터 열리는 추계 서울 패션위크를 앞두고 서울시는 ‘시민 누구나 즐기는 패션축제’라는 슬로건을 앞세웠다. 일반인에게 패션쇼 입장권을 파는 ‘이례적 컬렉션’인 것도 모자라 21일엔 서울시청 광장에서 전야제를 열기로 했다. 디자이너들의 합동패션쇼 외에 공연도 펼친다. 한편 ‘나도 디자이너’라는 제목으로 시민들의 의상 제작을 지원하는 이벤트도 진행 중이다. ‘서울 스타일’을 주제로 한 UCC 공모 당선자에겐 패션쇼 초대권도 준다. 이 모든 것이 시민들 입장에선 반가울 일이다.

하지만 냉정하게 생각해 보자. 패션위크 예산과 인력, 예나 지금이나 빠듯하다. 그렇다면 선택과 집중이 답일 터다. 차라리 디자이너가 좀 더 멋진 장소에서 색다른 무대를 꾸밀 수 있도록, 그래서 옷이 더 주목받을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게 패션위크의 본래 목적에 더 맞지 않을까. 무엇보다 더 아쉬운 건 ‘테이크오프’ 부문의 폐지다. 이에 대해 서울시는 “서울컬렉션 디자이너 선정 심사 기준을 종전보다 낮췄기 때문에 ‘테이크오프’ 프로그램은 더 운영할 필요를 못 느꼈다”고 밝혔다. 하지만 애초 ‘테이크오프’를 신설한 건 서울 패션위크만의 ‘특화상품’을 만들자는 것이었지 심사 기준을 뚫지 못한 이들의 구제 차원은 아니었지 않나. 그러니 “세 부문으로 나눠 진행하기엔 장소 확보가 어려웠다”는 추가 설명을 듣기 전까진 의문만 쌓이기 십상이다.

끝으로 사족 하나. 이번부터는 행사장도 용산 전쟁기념관과 서교동 자이갤러리로 옮긴다. 그간 해왔던 대치동 SETEC과 방이동 올림픽공원이 ‘너무 멀어서’라는 이유다. 하필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뜨는 이 마당에, 그래서 일부러 관광객들도 강남 거리 구경에 나선다는 이 와중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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