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인들 12개 나라만 알아…시암 너머 땅은 지도에도 없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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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1호 10면

하멜은 1668년 조선 체류 경험을 바탕으로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책을 펴냈다. 제목은 ‘난선제주도난파기(蘭船濟州島難破記ㆍRelation du Naufrage d’un Vaisseau Hollandois)’였다. 여기엔 목적이 있었다. 원래 그는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의 선원이었다. 그래서 조선 체류 13년 동안의 밀린 임금을 받기 위해 보고서용으로 이를 작성했던 것이다. 훗날 『하멜표류기』로 알려진 이 책은 조선을 유럽에 소개한 첫 서적이란 평가를 받았다.

13년치 임금 받기 위한 보고서 『하멜표류기』에 묘사된 17세기 조선

그는 이 책에서 조선에 대해 “인구는 많으나 쌀과 면화가 풍족하게 나는 곳”이며 “청나라가 지배하기 전만 해도 매우 풍요롭고 행복해서 사람들이 하는 일은 단지 먹고 마시며 즐겁게 노는 것뿐”이라고 적어놨다. 그러면서 여러 페이지에 걸쳐 지리적 위치부터 교육·종교·교역 등을 소상히 소개했다. 다만 조선에 우호적이지 않았던 하멜은 이 땅을 ‘미신과 무지가 지배하는 야만의 세계’로 묘사했다. 가령 자신들을 대하는 제주도민들에 대해선 이렇게 표현했다. “제주도 평민들은 우리가 무얼 마실 때 코를 돌려 귀 뒤쪽에 갖다 놓는다는 소문을 퍼뜨렸다. 또 머리가 금발이기 때문에 우리를 사람이라기보다는 물속의 괴물에 더 가깝게 여겼다.”

조선인들의 좁은 세계관도 꼬집었다. “그들은 12개의 나라만 알고 있었다. 그들에게 몇 나라의 이름을 나열하자 우리를 비웃으며 그것들은 도시와 도읍의 이름이라고 말했다. 그 이유는 태양이 한나절 동안 그렇게 많은 나라를 비출 수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들의 지도에는 시암(태국) 너머의 땅은 나타나 있지 않았다.”

조선인들의 민족성에 대해선 다양하고도 엇갈리는 견해를 보였다. ‘물건을 훔치고 거짓말하며 속이는 경향이 매우 강하다’면서도 ‘여자들처럼 여리고 성품이 온순하다’라고 묘사했다. 그러면서 ‘호기심이 매우 많고 이국적인 것을 기꺼이 듣고 싶어 할뿐더러 구걸하는 것을 수치스러워하지 않는다’고도 했다.
이 밖에도 양반들이 아내 두세 명을 한 집안에 데리고 사는 일부다처제, 살인자·간통녀 등에게 끔찍한 형벌을 내리는 징벌제도, 자식의 과거급제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는 교육열, 네댓 살짜리도 담배를 피우는 모습 등 그가 접한 조선 중기의 다양한 사회상을 기록으로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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