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 '가시고기의 부성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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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식물의 생태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보며 시청자들은 인간보다 더 진한 그들의 자식 사랑과 인간 세계 이상으로 치열한 생존경쟁에 자신을 대입해가며 감동을 받곤 한다.

KBS1이 27일 방송할 '가시고기' (밤 10시) 는 모성과는 또 다른 차원의 부성을 그려 시청자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할 듯하다. 국내 처음으로 가시고기의 생태를 다뤘다. 가시고기는 새끼를 낳기 위해 둥지를 만들거나 굴을 파는 유일한 수중 생물로 알려져 있다.

같은 이름의 소설로 널리 알려졌듯이 가시고기는 부정(父情) 의 상징으로 통한다. 가시고기의 암컷은 산란 끝에 생을 마감하기 때문에 그 알을 지켰다가 새끼 가시고기로 키워 세상으로 떠나보내는 것은 온전히 수컷의 몫이다.

알을 새끼로 키워내기 위해 수컷 가시고기는 다른 물고기들이 돌멩이나 수초 틈에서 편히 쉬는 밤에도 끊임없이 지느러미를 움직여 알이 들어 있는 둥지에 산소를 공급한다. 그러면서도 수많은 물고기로부터 알을 보호하기 위해 야간 경계를 늦추지 않는다.

보름 가량 지나 알이 부화하고 새끼들이 독립할 채비를 갖출 때면 종족 보존이란 숭고한 목적을 이룬 가시고기 수컷도 최후를 맞는다. 그렇다고 그냥 가지는 않는다. 자기 알의 부화를 돕느라 이미 만신창이가 된 몸을 새끼들의 먹이로 내놓는다.

제작진은 경북 경주시 감포 앞바다로 흘러드는 대종천과 오대산에서 발원한 연곡천, 진부령에서 내려오는 북천 등 가시고기 서식지를 1년여 동안 화면에 담았다. 또 7~8㎝에 불과한 가시고기와 엄지손가락만한 그들의 굴, 그리고 0.5㎝에 지나지 않는 새끼들을 촬영하기 위해 내시경 카메라까지 동원했다.

안희구PD는 "이 작품을 만들면서 아직 학계에도 잘 알려지지 않은 가시고기의 생태 몇 가지를 발견했다" 고 밝혔다.

가시고기는 얕은 곳이 아닌 깊은 곳에도 둥지를 튼다는 것과 짝짓기 때 구애를 하는 쪽은 수컷이 아니라 암컷이라는 사실, 그리고 수컷이 입으로 알을 건드려 새끼들이 알을 깨고 나오는 것을 돕는다는 사실 등이다.

안PD는 "특히 수놈의 알깨기는 지금까지 나온 가시고기에 관한 책자 어디에도 언급되지 않은 사실" 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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